<사진=뉴시스>

[이코리아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승계작업 핵심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기업가치 부풀리기다. 하지만 일감몰아주기를 마냥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2월 발효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를 금지했다. 정 부회장은 이러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는 한편 보유지분 가치를 올리기 위한 일석이조의 수단으로 계열사간 합병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14년 4월 일어난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이다.

◇ 공정위 규제, 지분율 줄여 무사 통과

2014년 당시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엠코 지분은 24.96%. 아버지인 정 회장 보유지분까지 더할 경우 35.06%로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에 흡수합병되면서 정씨 부자의 지분율은 16.4%로 크게 줄어들어 규제 걱정 없이 일감을 계속 몰아줄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건축·토목계열의 현대엠코와 화공 플랜트 중심의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2013년 2조616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던 현대엔지니어링은 엠코를 흡수한 이후 크게 성장해 2017년 도급순위 7위의 대형 건설업체로 자리잡았다. 현대엔지니어링의 2016년 매출액은 6조1808억원. 주가 또한 2014년 초 38만원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100만원을 넘어섰다. 정 부회장 보유지분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승계 재원 마련의 걱정도 덜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계획도 마찬가지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2015년 지분 일부를 매각하며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해왔지만 여전히 정씨 부자가 20% 가까운 지분을 보유 중이어서 문제가 돼왔다. 정씨 부자는 순환출자 구조와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겠다는 명분으로 합병을 추진 중이지만, 시민단체에서는 합병비율이 정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산정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명분과 달리 합병을 통해 정 부회장 승계작업을 위한 재원 마련의 의도가 짐작된다는 것이다.

◇ 정 부회장이 편취한 사익 2조원 넘어

그렇다면 과연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정 부회장은 얼마를 벌었을까? 정 부회장이 설립 초기 글로비스에 출자한 금액은 약 30억원. 현재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시가(15만1000원)로 환산하면 약 1조3229억원이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씨 부자는 지난 2015년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 지분 13.39%를 매각하면서 약 1조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했다. 정 부회장이 매각한 지분이 8.59%임을 고려하면 정 부회장에게만 약 7000억원 이상의 수익이 돌아간 것. 게다가 2004년 노르웨이 해운업체 빌헬름센에 25%가량의 지분을 매각하면서 1050억원의 차익을 실현한 것도 추가해야 한다. 이 금액만 합쳐도 이미 2조1000억원 이상이다.

여기에 설립 이후 매년 받아온 배당금도 빠뜨릴 수 없다. 현대글로비스는 30대기업 평균에 비해 월등히 높은 배당성향을 자랑한다.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30기업의 평균 현금 배당성향은 약 26.9%. 현대차그룹은 19.6%로 평균보다 낮지만, 유독 글로비스는 42.5%로 계열사뿐만 아니라 30대 기업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배당성향을 보였다. 2015년 현대글로비스의 당기순이익이 2645억원임을 감안하면 정 부회장은 약 260억원의 배당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이후 받아온 배당수입을 더하면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마련한 재원은 3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노션 지분도 큰 역할을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14년 자신이 보유한 이노션 지분 30%를 매각하며 약 3000억원을 벌어들였다. 2015년에는 다시 이노션 지분 8%를 매각하면서 약 952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마련했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수익도 고려해야 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이다. 정씨 부자가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사들여야 할 현대모비스 지분이 약 5조5000억원임을 감안하면, 아직 실탄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은 부족한 재원 마련을 위한 마지막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결국 정 부회장은 개인적인 경영 역량보다는 현대글로비스, 이노션, 현대엔지니어링 등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을 거의 다 마련한 셈이다. 내부거래로 승승장구한 재벌 후계자가 순조롭게 경영권 승계작업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역량있는 경영인의 활약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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