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이코리아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수싸움이 치열하다.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을 통해 단계적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힌 반면,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며 일괄타결식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부터 8일까지 중국 다롄(大連)을 방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회담을 나누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북미 대화를 통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각국이 단계별, 동시적으로 책임 있게 조처해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방중 때도 단계적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강조한 바 있다.

시 주석 또한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미 양국이 서로 마주 보고 가면서 상호 신뢰를 쌓고, 단계적으로 행동에 나서기를 원한다”며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론에 힘을 실었다.

미국이 리비아 사례와 같은 일괄타결식 비핵화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단계적 비핵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단순히 중국과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기만은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번 북중회담이 북미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보내는 김 위원장의 신호라고 분석하고 있다.

AP통신은 9일(현지시간) 이번 북중회담은 북미 간의 협상에 있어서 중국이 여전히 핵심 변수라는 점을 미국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성사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AP통신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으며, 특히 ‘단계적 비핵화론’에 대한 시 주석의 확고한 지지를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북미 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한의 지지자로 나선다면 김 위원장에게도 강력한 협상력이 생기기 때문.

만약 비핵화 논의에서 북미 양국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다시 긴장상태가 온다 해도 북한에게 중국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자오퉁(趙通) 칭화대-카네기 세계정책센터 연구원 또한 9일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이 실질적 성과가 없는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비핵화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내세울 경우 북미 대화가 무산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며 “이 경우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옵션 선택이나 추가 경제제재를 막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지지와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의 방중은 다가올 북미 회담에서 미국의 요구대로 순순히 따르지만은 않겠다는 의사 표시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이 김 위원장의 이러한 의도를 순순히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이란 핵합의 탈퇴를 공식 선언하고 2015년 이후 해제됐던 대이란 경제제재의 복원을 지시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은 이란에 대해 단계적 비핵화를 시도하면서 잠재적 핵능력 유지를 허용해준 전임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강력한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에서 이란 핵합의보다 더 나은 수준의 결과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더 나은 결과란 이란식 단계적 비핵화가 아닌 리비아식 일괄타결 비핵화를 의미한다. CNN은 이에 대해 “이란 핵합의 탈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판돈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또한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오늘 탈퇴의 또 다른 측면은 미국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인데, 이는 이란뿐 아니라 다가오는 북한 김정은과의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북한이 1992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가 핵연료의 전면과 후면을 제거하는 것, 즉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포기)”라고 덧붙였다.

복잡한 수 싸움 속에서도 북미 양 정상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경제성장을 위해 제재 해제가 필요하고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확실한 정치적 성과가 필요하다. 이미 북미대화의 활시위는 당겨졌고 과녁 어디에 적중할지만 남아있다. 방북 중인 폼페오 국무장관이 어떤 합의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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