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지난 2월5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삼성그룹의 금산분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자발적 처분을 요구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결단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현행법상 금융업종이 보유할 수 있는 계열사 지분은 총자산의 3%로 제한된다.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2017년 말 기준 258.4조원으로 3%인 7.75조원까지 계열사 지분 보유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 8.23%는 시가 기준 27조원을 넘어선다. 금융업종 중 유일하게 보험업에만 소유 지분을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계산하는 규정이 적용된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약 5600억원으로 계산돼왔다.

보험업법의 구멍을 통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소유 문제는 오래 전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이재용 삼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의 핵심이 삼성생명 소유 삼성전자 지분이라는 점 때문에 “보험가입자의 돈으로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된 것.  삼성은 이런 여론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0일 간부회의에서 “금융회사의 대기업 계열사 주식 소유 문제의 경우 관련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해당 금융회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금융회사가 단계적, 자발적 개선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방안을 적극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특정 기업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융업계에서는 해당 발언이 삼성생명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태 등 연이은 악재도 삼성생명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삼성증권 사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순식간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을 정도로 커다란 사회적 이슈였다. 전 국민의 눈이 삼성그룹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삼성생명 문제를 언급한 이상 이 부회장도 조만간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게 됐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삼성생명 문제를 처리할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 우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 최상위에 있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소유의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것이지만 27조에 달하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분식회계 논란이 일면서 물거품이 됐다.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 형태로 삼성생명의 보유 지분을 처분하는 방법도 있다.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지분 매각으로 이익을 챙기고, 삼성전자는 자사주 소각으로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지난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매수자를 찾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한해 특정 주주로부터 이를 자사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삼성생명 보유 지분을 자사주로 매입할 경우 삼성전자 그룹 내 지분율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 해당 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미지수라는 점이 문제다.

이 밖에도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을 분할해 일부를 금융지주로 전환한 뒤 그 자회사가 삼성전자의 지분을 유지하는 방식도 있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는 비금융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 다만 “소유할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규정 때문에 금융지주 전환이 되더라도 2대주주인 삼성물산(4.65%)보다 낮은 지분율을 유지해야 한다. 즉, 금융지주 전환 이후에도 삼성전자 지분 약 4% 가량을 처분해야 한다는 것. 부담은 줄어들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자금이 필요하다. 게다가 삼성그룹의 금융지주 설립 시도 자체도 여러 차례 난항에 부딪혀 좌초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현재까지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문제에 관해 어떤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의식해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의 최종심 문제가 해결된다면 의외로 전향적인 대응책을 내놓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삼성그룹은 이미 지난 4월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404만주를 처분하며 정부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답한 바 있다. 공정위가 제시한 기한은 오는 8월 26일 이었지만 삼성 측은 4개월이나 빨리 처분을 결정하면서 문제를 매듭지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10일 YTN 인터뷰에서 “삼성 개혁의 핵심은 삼성생명 등 보험계열사들이 고객의 돈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금산분리 문제”라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삼성도 조만간 비가역적 변화를 시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종심을 앞둔 이 부회장이 금융당국의 요구대로 결단을 내릴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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