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건배를 나누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이코리아] 북한이 ‘핵동결’을 선언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북한의 깜짝 발표에 국제사회가 환영의 뜻을 표하는 가운데, 동북아 역내 구도에서 중국의 역할이 모호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라고 밝혔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종료하고 경제성장에 집중하겠다는 것. 

김 위원장은 이어 “이제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었다”며,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환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핵동결 선언은) 북한과 세계를 위해 매우 좋은 소식이며 커다란 진전이다. 정상회담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국 또한 루캉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성과를 얻기를 바란다”며 “중국은 계속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현재 속도를 내고 있는 비핵화 논의에 대해 마냥 기뻐하지만은 못하는 모양새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가운데, 북한이 점차 미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기 때문. 뉴욕타임스는 22일 “중국은 (비핵화 협상에서) 외곽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 처해 있다”며 “중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국·미국과의 관계개선 뿐만 아니라 중국에 대한 경제·안보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거대한 협상을 준비 중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북한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지만 둘의 관계는 2000년 이후 오랜 불화에 시달려왔다. 김 위원장 또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으로부터 안보보장을 받는 대외정책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북한은 비핵화 조건에서 핵심 사항인 주한미군 철수를 빼기도 했다. 북한이 현재의 방향을 고수할 경우, 북한이 ‘친미’로 돌아서거나 미국과 동맹관계인 통일 한국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롱아일랜드 대학의 북한전문가 시아 야펭 교수는 이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과 연대하는 통일된 민주국가 한국의 등장은 공산주의체제 중국에게 위험한 일이다”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오랫동안 북한에게 미군과의 완충지대 역할을 주문해왔던 중국으로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은 원하지 않는 결과다. 미국 워싱턴 스팀슨센터의 윤선 선임연구원은 “북한을 비핵화시킬 평화조약 체결은 중국에게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를 소멸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평화조약이 체결되더라도 한반도의 친중 성향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

김 위원장은 중국의 이러한 우려를 신경쓴 듯 지난달 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중국이 비핵화 논의에서 소외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뉴욕타임스는 “김 위원장의 방중은 그의 할아버지·아버지가 중국과 소련을 방문한 것과는 달리 화해의 제스쳐는 아닐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은 북한이 중국의 지원을 업고 협상에 들어선다는 것을 미국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사실 중국이 아니라 미국에 내미는 카드였다는 것. 랄프 코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 소장 또한 지난 3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중국 없이 흘러가던 한반도 비핵화 협상 분위기를 볼 때 북한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아 야펭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북미회담 최선의 결과는 좀 덜 위험한 수준의 현상유지”라며 중국은 “북미회담이 핵폐기에 대한 애매한 약속으로 마무리되고 중국이 큰 발언권을 가진 장기 협상이 이어지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이 비핵화 논의에서 다시 운전대를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