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회사는 매달 월급날이 되면 40만원의 식대를 포함해 급여를 지급한다. 식대 지급은 노사 간 임금협약으로 명시된 부분이다.

최근 회사는 노조와 야근과 휴일근무수당 등을 산정하면서 식대 40만원을 통상임금으로 계산하지 않았다. 이때 회사는 노동부 지침을 근거로 들었다. 노동부는 식대, 급식비를 복리후생 차원에서 지급하는 금품으로 간주하고 있다.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성이 다른 임금에 비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노조는 임금협약에 따라 정기적으로 지급했다면 통상임금으로 봐야한다는 판례를 들어 항변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K회사는 수당 20만원을 일방적으로 실비로 항목을 바꿨다. 이 수당은 업무활동비의 일환으로 매달 1일 정기적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지급돼왔다.

이후 K회사는 이 수당에 대해 "일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실비를 보전해주는 것"이라는 논리를 들어 비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회사에 노조가 있었지만 사측은 이 과정에서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

앞의 두 사례에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통상임금이다. 정기적으로 지급하던 수당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비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실비라면 통상임금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K회사의 노조는 이 수당을 다시 통상임금에 포함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뒷전에 밀린 상황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바로 통상임금 문제다. 노사가 10년이 넘도록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느라 동분서주 했던 문제다. 하지만 최근 대법원까지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이 문제가 이번 방미에서는 성추행 사건에 밀려 제대로 된 검증도 없는 상태다.

박 대통령은 방미기간 중 통상임금에 대한 댄 애커슨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의 문제제기에 대해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다. 이것을 확실히 풀어가겠다"고 답변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기업과 근로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내 사안에 대해 외국기업에게 긍정적 사인을 보냈기 때문이다. 80억 달러 투자를 미끼로 던진 GM회장의 '작전'에 말렸다는 일부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앞서 애커슨 GM 회장은 한·미 최고경영자(CEO) 라운드테이블에서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서 보너스 등을 제외해 줄 경우 향후 5년간 8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마저 모호한 입장을 밝히면서 사법부에 대한 압박으로 비쳐지는 등 논란을 자초했다.

실제로 15일 취재 결과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노동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모두 통상임금을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노총은 소송은 물론 노사정위원회에서 빠지겠다고 강수를 놓고 있고 야당은 탄핵감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갈수록 논란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민주노총은 14일 성명에서 "(박 대통령의 통상임금 관련 발언이) 국익과 노동자의 권리를 팽개친 것"이라며 "몇 년에 걸친 소송 끝에 겨우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GM CEO의 말 한마디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덜컥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통상임금 문제는 우리나라 노사 관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노동계는 이를 당연히 줘야할 '체불임금'으로 인식하는데 비해 재계는 '추가비용'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통상임금은 '법 기준 근로시간 또는 그 이내에서 정한 근로시간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기본급'과 '고정적 일률적으로 지급하기로 정해진 고정급 수당'을 말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기본급 +정기 수당'을 통상 임금으로 볼 수 있다.

통상임금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기업의 인건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 야근수당, 휴일근무수당, 퇴직금 등을 계산하는 기초가 된다. 통상임금이 작을수록 각종 수당도 적게 나온다. 재계는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연간 35조원의 돈이 추가로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통상임금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부 회사에서는 법정수당만 통상임금으로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식대, 가족수당, 상여금 등이 주로 도마에 오른다. 회사는 식대, 가족수당 등에 대해 "통상임금이 아니다"라고 유권해석하고, 노조가 반발하면서 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현재 통상임금 여부를 가려달라는 근로자들의 소송이 줄 잇고 있다. 현대차 노조를 비롯해 재판이 진행 중인 관련 소송만 어림잡아 60건이 넘는다.

민주노총은 근로자들을 대표해 집단소송을 추진할 계획이다. 노조가 없거나 개별적으로 소송하기 어려운 사업장을 대신해 집단소송을 벌이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민주노총 정호희 대변인은 "우리나라 급여체계에서 기본급의 비중은 40%이고 60%는 추가노동을 통해 지급된다"며 "최근 법원과 노동계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정부와 재계가 아직도 협소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변인은 "개인 체불임금은 신고만 하면 되지만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민사채권 청구이기 때문에 개인이 하기에 매우 힘들다"며 "민주노총이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소송을 원하는 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야당 역시 통상임금에 대한 박 대통령의 언급이 부적절했다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탄핵감이라는 강성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민주당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지난 13일 현안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지극히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법정에서 다퉈야할 문제지 투자를 빌미로 대통령에게 해결해달라고 부탁할 사안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자칫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사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통상임금 문제는 기업이 임금 부담을 덜기 위해 편법으로 악용하면서 생긴 문제"라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반영해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 마련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진보정당과 노동계 정치세력을 통합하기 위한 정치단체인 '새로하나'도 같은 날 성명서에서 "박 대통령은 애커슨 GM 회장이 통상임금을 해결해달라는 말 한마디에 '꼭 해결하겠다'며 1800만 노동자를 새롭게 착취하는 중대 사안에 굴욕적이고 초헌법적으로 답변했다"며 "가히 대통령 탄핵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반도 전쟁위기 상황에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GM자본에게 상여금의 통상임금 제외를 통한 노동자 임금삭감을 약속하며 붙들고자 했던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언급한 것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청와대의 공식 입장이 확인되지 않은 만큼 박 대통령의 발언 배경 등을 면밀히 따져 논의를 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해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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