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6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정치후원금 기부행위를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정치후원금 기부행위를 위법하다고 판단을 내린 가운데, 오히려 선관위의 직무유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관위는 16일, 김 원장이 지난 2016년 5월 19일 잔여 후원금 중 5000만원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정책모임 ‘더좋은미래’에 기부한 것은 공무원의 기부행위를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113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종전의 범위 내에서 정치자금으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범위를 벗어나 특별회비 등의 명목으로 금전을 제공하는 것은 공직선거법 113조에 위반된다”고 설명했다. ‘더좋은미래’의 가입비 1000만원, 월 회비 20만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큰 금액이라는 것.

반면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간 것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으나 출장 목적과 업무 관련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직접적인 판단을 유보했다. 국회의원 해외출장 시 직원을 대동하고 관광일정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국회 예산을 사적 경비로 사용한 것이 아닌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보좌진 퇴직금을 정치후원금 계좌에서 지급한 것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선관위의 발표 직후 김 원장은 곧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으며, 청와대도 사표를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선관위의 판단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년 전 위법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청와대에서 질의가 오자 뒤늦게 위법 판단을 내렸기 때문.

2016년 당시 김 위원장은 ‘더좋은미래’에 후원금을 내기 전 선관위에 해당 기부행위의 적법성 여부를 문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전날 발표한 내용과 동일하게 후원금 규모가 종전 범위를 벗어날 경우 위법이라고 답했다. 김 원장은 선관위 답변에도 불구하고 5000만원을 ‘더좋은미래’에 기부한 뒤, 2017년 1월 말 해당 후원 내역이 포함된 회계보고서를 선관위에 제출했다.

문제는 선관위가 김 원장이 제출한 회계보고서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았다는 것. 김 원장의 기부행위가 위법하다면 회계보고서 검토 후 문제를 제기했어야 하지만 선관위는 2년 뒤 청와대에서 질의가 올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었다. 김 원장은 17일 사임 의사를 밝힌 페이스북 글에서 “법 해석상 문제가 있는 경우 선관위는 통상 소명자료 요구 등 조치를 합니다만 지출내역 등을 신고한 이후 당시는 물론 지난 2년간 선관위는 어떤 문제제기도 없었다”며 “이 사안은 정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관계자 또한 1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자료가 워낙 많다 보니 김 전 원장의 문제를 확인하지 못한 것 같다”며 “실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선관위 스스로 직무유기를 인정한 셈이다.

게다가 위법성 판단 기준 또한 모호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선관위는 김 원장의 기부 행위에 대해 종전 범위를 현저히 벗어났다며 위법 판단을 내렸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금액이 위법성 여부를 가리는 기준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또한 ‘종전의 범위’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특별한 설명은 없었다.

현재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김 원장과 마찬가지로 ‘더좋은미래’에 약 420만원을 기부한 사실이 밝혀져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의 전날 발표에 따르면 홍 장관의 기부행위가 위법한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관위가 ‘종전의 범위’를 어떻게 산정하느냐에 따라 불법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 만약 월 회비 20만원이 기준이라면 무려 21배의 금액을 후원한 것이지만, 연 회비로 계산하면 2배를 넘지 않는 금액이다. 초기 가입비 1000만원까지 고려하면 홍 장관의 기부가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선관위는 김 원장의 기부행위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리고도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계속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통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삼는다면 국회의원 임기만료 직전에 정당에 납부하는 당비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며 “선관위의 이런 해석은 매우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16일 선관위의 직무유기를 조사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이런 식으로 해이하게 운영되는 기관에 선거 행정을 맡겨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든다”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도, '실수로 검토하지 못했다'도, 변명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17일 11시 40분 현재 해당 청원에는 약 2만5930명이 참여했다.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선관위의 직무유기를 조사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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