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올해 첫 환율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 이번에도 환율조작국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외환시장 개입내역을 공개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 재무부는  13개국의 환율 정책에 대한 ‘주요대상국 환율정책 보고서’를 발표하고, 한국을 ‘환율조작국’ 아래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매년 4월·10월 두 차례 공개되는 환율보고서는 ▲대미무역 흑자(200억 달러 이상) ▲경상수지 흑자(GDP 대비 3% 이상) ▲정부의 외환개입(GDP 대비 2% 이상) 등 세 가지 기준에 따라 환율조작이 의심되는 국가를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 가지 기준에 모두 걸리는 국가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미국의 직접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한국은 대미무역·경상수지의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해 중국·일본·독일·스위스·인도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관찰대상국은 미국 측의 면밀한 감시를 받게 되지만 직접적인 경제제재는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숨 돌린 셈이다. 하지만 마냥 안심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지난 2016년 2월 미국 교역촉진법 개정안 발효 이후 다섯 차례 환율보고서가 발표되는 동안 한 차례도 빠짐없이 관찰대상국 명단에 올랐기 때문.

게다가 미국은 이번 환율보고서에 “미 재무부는 한국의 통화관행을 지속적으로 면밀하게 감시할 것이며, 한국정부에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신속히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며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다. 미국은 이어 한국이 지난 2017년 하반기 약 90억 달러(GDP 대비 0.6%)를 순매수하며 원화 강세 억제를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했다고 지적하며 “무질서한 시장 상황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환율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009년 최고 1575.00원을 기록한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4월 16일 현재 1071.70원을 기록 중이다. 이는 2012년 3월 15일 한미 FTA가 발효된 시기와 비교해도 약 100원 가량 하락한 수치다. 한미FTA 이후 원화 가치는 완만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지만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을 인용해 지난 2010년 이후 원화가 실제 가치에 비해 1~12% 가량 저평가됐다고 주장하며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 재무부 환율보고서의 한국 관련 내용. <자료=미 재무부>

환율보고서에 담긴 미국의 메시지가 강력한데다, OECD 회원국 중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는 나라는 한국뿐이어서, 개입내역 공개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공개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복귀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CPTPP 기준에 따라 공개 방식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CPTPP는 회원국의 외환시장 개입 현황(매수·매도 총액)을 분기별로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개입내역 공개가 처음인 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 등에 대해서만 사정을 고려해 반기별로 매도와 매수를 더한 순매수(순매도) 규모만 공개하도록 했다.

만약 베트남 등과 같이 반기별로 순매수만 공개하는 방식이 아닌 매도액과 매수액을 분기별로 공표하는 CPTPP 기준이 적용될 경우 정부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계속되고 있는 원화 강세 흐름을 제어할 역량도 위축되는데다, 환투기 세력이 정부의 개입 패턴을 파악할 위험도 높아지기 때문. 또한 현재의 원화강세가 가속된다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기업들도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열린 제5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는 미국과 쌍무적으로 협의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이어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는 주기를 일별, 월별, 분기별로 하는 나라도 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한 국가 중에는 6개월 단위로 공개하는 국가도 있어서 그 동안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어떻게 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어떤 경우에도 특정 국가와 쌍무적으로 할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회의 및 IMF·세계은행(WB) 춘계 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만나 관련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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