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일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개막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무역전쟁을 막기 위해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시 주석은 지난 9일(현지시간) 중국 하이난성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 개막연설에서 “중국은 무역수지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며, 진지하게 수입을 확대하고 경상수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이 이날 연설에서 발표한 내용은 크게 ▲시장진입 규제 완화 ▲투자환경 개선 ▲지식재산권 보호 ▲수입 확대 및 관세 인하 등의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중 자동차 수입 관세 인하는 미국 선거의 핵심인 중서부 러스트벨트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는 카드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다. 시 주석은 그 밖에도 금융업분야 외자유치 조건 완화, 보험업 개방, 국가스마트재산권국 발족, 기타 수입 물량 확대, 자유무역항 건설 등을 언급하며, 미중 무역마찰을 대화로 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도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시진핑 주석의 관세와 자동차 (무역) 장벽과 관련된 사려 깊은 발언, 그리고 지적재산권 및 기술 이전에 대한 깨달음에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뉴욕증시도 이날 미중 무역마찰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듯 주요 지수가 모드 상승한 채 마감했다.

하지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여전히 시 주석의 제안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중국경제 전문가 데릭 시저는 10일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시 주석의 연설에 대해 “중국식 올리브가지(평화의 상징)”라며 “중국은 대규모의 보조금과 규제 등 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수입을 확대해 트럼프를 달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은 자국 기업을 우대하는 보호주의 정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IT, 우주항공, 바이오 등 첨단기술산업 분야에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집중 지원하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을 고수해왔다. 미국 또한 최근 ‘중국제조 2025’ 관련 산업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경계심을 보였다. 하지만 시 주석의 연설에서 이와 관련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경제전문매체 인베스터즈비즈니스데일리(IBD) 또한 10일 보도에서 “시 주석의 제안 중 새로운 것은 오직 자동차 관세를 낮추겠다는 약속뿐이었지만, 그마저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IBD는 이어 “시 주석은 투자규제 완화와 외국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등 모호한 약속들을 반복했다”며, 중국경제에 미국이 원하는 방식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의 연설의 경제적 배경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주목하고 있다. 당장 미국과의 무역마찰 완화도 중요하지만,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입지를 세우면서 미국을 고립시키는 것이 이번 연설의 주목적이라는 것. 시 주석은 9일 연설에서 미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개방은 진보이며, 폐쇄는 낙후라는 것을 보여줬다”며 “냉전 사고와 제로섬 게임 이론, 고립주의는 진부하고 시대적 추세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 시 주석은 또한 “대항이 아닌 대화의 길을 가겠다”며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패도에 기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는 철강관세, 북미자유무역협정 개정 등 무역관계에 있어서 보호주의적인 태도를 보여 온 트럼프 정부를 고립시키고 국제무대에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로서 중국의 입지를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발언으로 이해된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전문가 스콧 케네디 연구원은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이번 연설을 통해 전 세계 지도자들의 지지는 제로섬 방식의 세계관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보다 시장 개방과 튼튼한 무역시스템에 대한 전망을 내비친 시 주석에게 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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