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은 9일, "삼성증권 사태를 공매도로 논의하는 것은 문제를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삼성증권 배당사고 이후 공매도 폐지론을 주장하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매도 폐지 청원은 10일 현재 청와대 답변 요건인 참여인원 20만명을 넘어섰다. 청원인은 “서민만 당하는 공매도를 꼭 폐지해달라”고 요구했다.

◇ 개미들의 주적, ‘공매도’

발행한도를 넘어선 주식이 임의로 입고된 삼성증권 사태는 그동안 공매도로 인한 주가하락에 시달려온 ‘개미’ 투자자들로부터 광범위한 분노를 사고 있다.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 판 뒤, 가격이 떨어진 주식을 되사서 갚아 차익을 실현하는 공매도는 많은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현행 제도 상 공매도에 대한 개인의 접근이 어렵고 기관·외국인 비중이 높아, 주식시장의 큰 손들이 공매도를 무기삼아 과도한 주가하락을 부추겨 개미들을 잡아먹는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과거 한미약품 사태는 공매도에 대한 개미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16년 9월30일 한미약품은 미국 제넨텍과의 기술수출계약 체결 소식으로 5%가량 급등하며 장을 시작했지만, 곧이어 터진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 해지 소식으로 18% 급락하며 장을 마감했다.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었지만, 외국인·기관은 오히려 대규모 공매도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봤다.

◇ 한국의 공매도 규제는 느슨한가?

과도한 주가하락, 시세 조종의 위험성, 결제 불이행시 야기될 시장 혼란 등 공매도는 많은 단점을 가진 제도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고려할 때 폐지론은 극단적인 발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에 대한 과도한 거품을 지양해 적정 가격을 발견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악재성 정보가 주가에 반영되는 경로를 제공해 급격한 폭락을 방지하기도 한다. 또한 보유 주식 없이도 매도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매도의 탄력성을 높이고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한다.

게다가 한국의 공매도 규제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엄격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공매도 규제를 위해 도입되는 조치로는 ▲공매도 포지션 보고 및 공시 ▲공매도 가격 제한(업틱룰) ▲무차입 공매도 금지 등을 들 수 있다. 공매도를 통한 증시 교란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각국 금융당국은 공매도 잔고(보유주식 수량에서 차입한 수량을 차감한 값이 음수인 경우)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할 경우 해당 증권 및 매도자에 대한 정보를 보고·공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틱룰은 공매도로 인한 인위적 가격급락을 막기 위해 직전가 이하의 공매도 호가를 금지하는 규정이다. 무차입 공매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공매도 관련 규정에서 대부분 주요 국가들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공매도 보고의무의 경우 일본, 유럽연합(EU) 등은 상장주식수 대비 공매도 잔고 비율이 0.2%를 초과할 경우 부과되지만 한국은 0.01%부터 부과된다. 선진국 중 우리 수준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호주 정도다. 업틱룰의 경우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EU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지 않으며, 미국·일본의 경우 가격하락폭이 큰 종목에 대해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변형된 업틱룰을 적용하고 있다. 전체 종목에 업틱룰을 적용하는 곳은 한국, 홍콩 정도다.

주요국 공매도 규제 현황. 보고 및 공시기준 단위는 공매도 잔고 비율. <자료=이정수·김도윤(2017), "공매도 규제에 관한 연구">

◇ 삼성증권 사태의 본질은 '공매도' 아닌 '시스템'

개인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공매도 자체라기보다는 공매도와 연계된 불공정거래의 위험성이다. 공매도는 가격하락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가격하락에 대한 내부 정보를 활용하거나 가격하락을 통해 부당이익을 취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은 공매도 규제로만은 해결하기 어려우며 더욱 엄격한 규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삼성증권 사태를 공매도라는 제도의 내재적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및 업계에서는 삼성증권 배당사고의 핵심을 공매도보다는, 한도를 초과한 주식 입고에도 아무런 제재나 경고가 없는시스템의 허술함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일 전산입력 오류에 의해 입고된 주식은 무려 약 28억주로 발행 주식의 30배가 넘는 양이었으나 입고 과정에서 아무런 경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공매도라기보다는 차라리 위조주식 발행 사건에 가깝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또한 지난 9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공매도는 존재하는 주식을 전제로 한 것인데 삼성증권 사태는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판 것이라 공매도가 아니다”라며 “공매도 제도 관련 여러 방안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겠지만 삼성증권 사고를 공매도로 논의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이어 “지난 6일 직원에 의해 배당이 실행된 게 아니라 전날 결제가 이뤄졌는데 그 과정에서 누구도 오류를 거르지 못했다”며 단순 개인 실수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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