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도 미세먼지로 인해 중국에 불만을 표하는 국민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지난 주말 이후 이어진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로 반중정서가 심화되고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현 상황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에 중국을 상대로 항의하라는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세먼지 오염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중국에 항의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28일 오후 2시 현재 17만515명의 동의를 얻었다.

반면 국내 미세먼지 측정 시스템의 부실을 지적하며 과학적 근거 없이 반중정서에 기대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데이터 수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중국 영향을 강조한 기존 연구들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 일부 전문가들은 확실한 근거 없이 중국에 항의하는 것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 미세먼지는 중국 탓일까

미세먼지 문제가 국내에서 주요한 관심사로 부각된 이후, 중국은 미세먼지의 핵심 발생원으로 지목받아왔다.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이종태 교수는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30%에서 50% 정도까지 국내 미세먼지는 중국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다”고 밝혔다. 2013년 환경부 발표에서도 국내 초미세먼지에 대한 중국 영향은 30~50%정도로 추정됐다.

미세먼지 중국책임론을 뒷받침하는 국내 연구결과도 다수 있다. 안양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및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 공동연구팀이 2014년 2월 24일~27일 4일간 서울의 미세먼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고농도 미세먼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은 중국으로 39.77%~53.19%의 기여율을 기록했다. 국내 기여율은 15.38%~37.10%였으며, 북한은 9.03%~18.08%였다.

이 같은 학계 연구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섣부른 중국책임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국내 고농도 미세먼지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만 확실한 근거 없는 항의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

아주대 예방의학교실 장재연 교수는 지난해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글에서 “중국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미세먼지 오염에 정량적으로 얼마나 악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 수준이 될 것이라고는 짐작되지만 막상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어 환경부 및 국내 연구진의 대기질 모델링이 중국책임론의 유일한 과학적 근거이지만 모델링 자체의 한계와 데이터 부족으로 신뢰할만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대기질 측정에 사용하는 모델은 미국 환경청이 개발한 ‘CMAQ’로 이미 중국 연구진들도 다수 활용하고 있는 모델이다. 이는 국내 연구진이 중국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장 교수는 환경부 연구 결과도 중국 내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자료가 없어 추정값을 넣고 계산한 것이라며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중국은커녕 국내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데이터 수집 시스템도 미비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현재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은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 협동으로 구축한 대기정책지원시스템(CAPSS)을 통해 측정되고 있다. 수원대 환경에너지공학과 장영기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CAPSS는 비산먼지와 제조업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형 배출원을 제외한 영세사업장 등 중소 배출원은 측정 대상에서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조차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국에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

◇ 한중 공동연구로 과학적 근거 찾아야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우선 국내 대기 측정 시스템의 신뢰성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미세먼지 국가 측정시스템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임용현 박사는 “국내 측정소의 미세먼지 측정값이 체감 오염도와 다르게 나타나면서 측정 신뢰성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면서 “방사선동위원소, 중금속동위원소, 방사선탄소 등 분석기법 확립을 통한 새로운 프로파일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박사는 미세먼지 유해성 평가를 위한 인증표준물질 개발과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정확한 추적이 가능한 시스템 개발을 필수 과제로 꼽았다.

중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과의 공동연구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중국 영향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서는 중국 측의 미세먼지 발생원 자료가 필수적이기 때문. 장 교수는 “한국 측 연구 결과의 한계가 너무나 뚜렷한데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중국탓을 하고 공식 자료로 배포하고 있으니, 이런 태도는 중국에게 공동연구를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항의 이전에 과학적 연구를 위한 국가간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장 교수는 이어 “동북아에서 중국과 한국 두 나라만 미세먼지가 발생하고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북한, 일본, 러시아, 몽골 등을 포함한 6개국 공동연구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된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 중이다. 환경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18 업무계획에 따르면 미세먼지 저감 실증사업에 약 500억원이 투자되며, 중국과의 대기질 측정자료 공유도 확대(35→74개 도시)될 예정이다. 또한 오는 6월 말 문을 열 한중 환경협력센터에서도 미세먼지를 포함한 대기질 관련 한중 공동연구를 핵심과제로 추진할 계획이다.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중 양국의 협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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