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미 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 <사진=폴리티코(POLITICO)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미국이 수입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 시행 전인 22일(현지시간) 일부 국가에 대해 관세 부과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임시적인 관세 면제 대상으로 지정된 국가 목록에는 한국이 포함된 반면 면제가 유력하던 일본이 빠져있어 양국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이날 상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일시 중단을 승인했다”며 “(면제 대상은) 2개의 나프타 국가와 유럽, 호주,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리고 한국이다”라고 밝혔다.

미국 측이 밝힌 관세 면제 대상은 캐나다, 멕시코, 한국, 유럽연합(EU) 회원국,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등이다. 다만 이들 국가에 대한 관세 면제가 영구적인 결정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청문회에서 “철강 수입품에 대한 관세 면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관세 부과가 면제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 조치가 임시적인 것임을 암시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관련 협상을 4월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혀 이번 조치의 데드라인도 이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면제 유력하던 일본, 왜?

이번 관세 면제 조치에서 주목을 끄는 점은 일본이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전부터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서 제외될 것을 자신해왔다. 지난 21일 NHK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세토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일본 제품은 미국 산업에 대한 기여도가 크고, 대체할 만한 상품이 없다”며 “일본산의 철강·알루미늄 일부는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주요 동맹국을 관세 대상에서 제외한 가운데 유독 일본은 관세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결정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면제 대상에서 제외된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최근 계속되고 있는 미일 FTA 논의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자간협상보다 양자협상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일본이 주도해온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미일 양국 간의 FTA 체결을 요구해왔다. 지난해 4월에는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세토 경제산업상을 만나 “일본과 무역관계 강화를 위해 협정의 형태를 취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미일 FTA는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로스 상무장관이 지난 21일 일본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주요 무역상대 5개국 중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의 FTA가 있지만, 일본, 중국, 유럽과의 사이에는 (FTA)가 없다”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발언한 것. 라이트하이저 대표 또한 “일본 농업 분야 시장 개방이 첫 목표”라며 미일 FTA 체결을 압박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미일 FTA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미국 측이 농업 분야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미일 FTA 체결 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 일본은 오히려 미국을 다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결국 지난 8일 미국을 제외한 채 나머지 11개 회원국들과 서명을 해야 했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미국 측의 이번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미국은 관세 면제 여부와 관련해 4월 말까지 논의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제외되도록 끈질기게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사이토 겐 농림수산상도 “보호주의가 점점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진 않다고 생각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미일 FTA 논의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만큼, 미국이 다시 일본을 면제 대상으로 포함시킬지는 미지수다.

◇ 한국 면제, 정부 강경대응이 효과

반면 당초 철강관세 부과가 유력시됐던 한국이 면제 대상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철강업계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한국은 최근 미 상무부가 백악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관세 부과 대상으로 언급되면서 면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백악관이 예상과 달리 한국을 면제 대상 목록에 포함시킨 것은 정부의 강경한 대응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미국의)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를 검토하는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미국과의 교섭에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산업통상자원부도 문 대통령 지시 이후 전략을 수정해 적극적인 설득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 미국 측은 한국을 포함한 12개 국가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에서 전세계에 대한 25% 관세 부과로 한 발짝 물러섰으며, 최종적으로는 한국을 임시 면제 대상으로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캐나다·멕시코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이 이미 면제 대상으로 지정된 것도 한국의 면제를 암시하는 단서 중 하나였다. 미국은 현재 논의 중은 NAFTA 재협상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며 두 나라를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 대한 이번 임시 관세 면제 조치 또한 향후 FTA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이 지속적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양보를 요구해온 만큼, 이번 면제 결정이 오히려 FTA 재협상의 난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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