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민간노동법 적용, 타임오프 보장받아야”

이연월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코리아청와대가 지난 20일 발표한 헌법개정안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공무원의 노동 3권을 보장하겠다는 부분이다. 청와대는 현역군인 등 법률이 정하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한 모든 공무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내용을 개정된 헌법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 노동3권 보장은 문재인 정부의 깜짝 제안은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공무원 사회 내부에서 노동권 쟁취를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하 공노총) 이연월 위원장 또한 공무원도 온전한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외쳐 온 활동가다.

이 위원장은 경찰청 일반직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여직원 모임 결성과 직장협의회 전환, 경찰 일반직 공무원 노조 설립까지 선두에서 싸워온 공무원 노조사의 산 증인이다. 외로운 싸움도 마다않고 헌신해온 이 위원장의 기여가 없었다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변화도 더 늦어졌을지 모른다.

<이코리아>는 지난 3월 16일 공노총 이연월 위원장을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공무원 노동운동 이야기를 들었다.

- 공무원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작은 여성 일반직 공무원 모임을 결성하면서부터다. 23세쯤부터 시작했으니 아마 공직 생활을 시작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여직원 모임 결성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국정감사였다. 당시는 엘리베이터걸도 당연하게 여기던 시대여서, 여경들에게 제복을 입혀 감사차 방문한 국회의원들에게 차도 대접하고 안내도 시켰다. 여성 일반직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로 차출됐다. 당시 서울경찰청을 방문했던 양경자 의원이 이런 행태를 보고 왜 여성들에게 이런 일을 시키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경찰청에서는 다음 국정감사 때부터는 여경들에게 제복이 아닌 양장을 입혀야겠다는 식으로 나왔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야 하는데 옷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여성 일반직 공무원과 여경이 같은 일에 동원됐는데 여경들에게만 양장을 새로 맞춰줬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정감사가 끝나고 지급된 격려금도 여경에게만 전달됐다. 잘못된 상황을 개선하지도 않으면서 일반직 공무원에 대한 또 다른 차별까지 가중된 것에 분개했다.

이를 계기로 처음 여직원 모임을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나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다들 불합리한 처사를 당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경찰청 내에서 근무하는 일반직 공무원들은 대부분 여성인데다 인원도 적어 정책이나 복지 측면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경들은 자체적인 모임이 활성화돼있어, 우리 일반직 공무원도 목소리를 내려면 자체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여직원 모임을 직장협의회로 전환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1998년 신문에서 공무원직장협의회 설립에 관한 법령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우선 나부터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기관 직협들을 찾아다녔다. 당시 30개 이상의 중앙부처 직협 연합단체를 이끌고 있던 행자부 직협회장을 만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2~3년간 배우면서 경찰 내에서는 어떤 형태의 직협을 어떤 방식으로 설립해야 할 지 확신이 섰다. 이후 여직원 모임을 소집해 법적 소통 창구를 만들자며 직협 전환을 건의했다. 다들 동참할 줄 알았는데 약 580명 중 단 한명도 나서지 않았다. 먼저 발을 들여놓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청 여성 일반직 공무원 대부분이 경찰관을 남편으로 두고 있었다. 직협에 참여할 경우 남편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컸다.

처음 한 명을 설득하는데 6개월이 걸렸다. 그 친구도 남편이 경찰관이었는데, 직협 이야기를 꺼냈더니 고민 없이 선뜻 동참하겠다고 답해 고마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줘 앉은 자리에서 세 명이 정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1년 가량 걸려 겨우 20명을 설득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핵심 구성원이 모이자 20명으로라도 우선 시작을 해보자고 마음을 먹게 됐다.

- 경찰 조직 상부에서는 직협 전환에 대해 어떻게 나왔나.

처음 서울경찰청 내부에 직협 설립 공고문을 붙였을 때 난리가 났다. 경찰청에 빨갱이가 입성했다고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일단 한 단체가 만들어지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아예 싹을 자르려고 나왔다. 다른 것은 다 감당할 수 있었는데 가족들에 대한 신변조사까지 이어지자 심리적으로 큰 압박을 느꼈다. 친정과 시댁 가족들 직업과 거주지까지 조사해서 상부로 보고하는 상황이었다. 나 말고 20명의 초기 멤버들에게도 압박이 들어갔다.

- 그렇게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직협 설립에 성공했다는 것이 놀랍다.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냈나.

직협 전환을 수년간 준비하면서 상당히 피폐해져 있었다. 직협 전환을 위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든 비용을 사비로 충당하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져 가스비를 3개월이나 연체한 적도 있었다. 살림도 신경을 쓰지 못하다보니 가족과의 사이도 소원해졌다. 직협을 결국 출범시키지 못한다면 오히려 경찰 민주화를 후퇴시키는 역사적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스트레스도 컸다. 당시 쓴 일기를 살펴보면 죽음으로 경찰청의 직협 설립 방해 행위를 고발하고 내 뜻을 알리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상부에서 나의 지방발령에 대한 입장을 정했다는 내용을 듣게 됐다. 핵심 멤버 4명 정도만 발령 내면 대부분 흩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미 죽음을 결심해 두려울 것이 없었던 나는 지방발령을 가게 되면 직협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상관들이 여직원들을 협박한 정황을 세상에 밝힐 것이라며 강하게 맞대응했다. 지방에 내려가서도 직협을 만들 것이라고도 했다.

죽기로 결정한 마음을 바꾼 건 아이 때문이다. 그날 집에 들어와서 문틈으로 웅크려 잠든 아이의 등을 보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 아이에게 엄마 역할도 제대로 못해줬는데, 엄마가 자기를 포기하고 떠났다는 상처까지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남편에게 그동안 내색하지 못했던 고민들을 털어놨고, 남편도 집안일은 걱정 말고 앞으로 1년간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라며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날 받은 가족의 위로가 가장 큰 힘이 됐다. 일이 잘 풀리려는지 다음날 출근하자 사측에서도 직협 설립은 허락할 테니 방법론은 함께 논의하자고 나왔다. 죽음을 각오했더니 실마리가 풀린 셈이다. 경찰청 측에서는 직협이라는 이름만 쓰지 말라고 요구해 이름을 ‘한울타리회’로 정했다. 대신 우리는 경찰서 별로 따로 직협을 만드는 것은 어려우니 서울 경찰청 산하 모든 경찰청 일반직 공무원이 가입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후 400여명이 창립 총회를 열고 직협을 출범했고, 1년 뒤 바로 경찰청 공무원 노동조합으로 전환했다.

- 경찰청 일반직 공무원은 노동조합을 결성했지만, 정작 경찰들은 노동조합이 없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은 굉장히 보수적인 조직이다. 대부분의 경찰관들이 자신을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가 아니라 사측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측에서 활동해온 역사가 길어 사고가 고정돼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찰들을 함께 깨우치고 경찰 노조를 탄생시키는 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일반직 공무원 결속보다 경찰 조직 자체의 민주성 확보가 더욱 중요한 과제다. 아직도 경찰은 노조를 결성하지 못했고 자기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일반직 공무원 노조 또한 과거 서울역에서 조합원과 전현직 경찰공무원, 공노촉 소속 단위노조 위원장 등이 노조가 없는 경찰·소방방의 공무원 연금을 대변하기 위해 집회를 열고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경찰 노조야말로 대한민국 민주화의 완성이라며, 경찰 노조가 결성되는 날이 내가 노조활동에서 물러나는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경찰 노조 위원장에서 상급단체인 공노총 위원장까지 하게 됐다. 최초의 여성위원장으로서 공무원 조직 내 여성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청 공무원 노동조합은 대부분 조합원이 여성이어서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고, 상급단체 활동 중에도 신기하게 여성이라는 점에 대해 불편을 겪은 적은 없었다. 노조 활동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성차별을 느낀 점은 없다. 다만 여성으로서 직장·노조·가사를 병행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면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일이 있다. 마치 귀가가 제 2의 출근 같은 느낌이다.

노조를 하다보면 지방현장 방문, 조합원 간담회 등으로 인해 밤늦게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 노조 결성 초기에는 회의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합의해도 나중에 2차, 3차 술자리까지 토론이 이어지기 때문에 다음날 와보면 흐름이 바뀌어 있기도 했다. 나는 가사 때문에 1차는 몰라도 2차, 3차까지는 참여하기 힘들다. 그런데 실제 회의시간 외에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은 것이 조율되다보니, 여성으로서 이런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없다는 한계를 많이 느꼈다.

노조나 공직사회에 여성 간부가 많지 않은 것도 이유가 있다. 처음 조합에 들어올 때는 여성이 더 많은 경우도 있지만, 결국 고위직에서는 여성에 대한 기회가 좁아진다. 일과 가정, 노조를 병행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직 가사는 여성이 전담해야 한다는 문화 때문에, 노조활동가로 남아있는 여성들이 많지 않다. 이것은 전체 문화의 문제이며 한 명이 개선해서 바뀔 일이 아니다. 가사는 여성의 몫만이 아니며 남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바꿔나가야 한다.

- 2016년 11월 공노총 제4대 위원장에 당선됐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동시에 겪고 있는 셈인데 어떤 차이를 느끼나.

노조 활동을 오래 해오면서 느꼈던 것은 노무현 정권 때 오히려 노동운동하기가 더 힘들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고위직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전 정권에서 보수적인 사고가 형성된 공무원들이 아직 책임자 위치에 남아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진보적이더라도 바로바로 해결되는 일이 없었다. 대통령은 해주려고 하는데 협상 파트너인 실무자들이 보수정권에서 커온 사람들이라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논리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정권 초·중기에는 훨씬 대화가 편했다. 노무현 정권 5년간 인사발령을 통해 깨어있는 사람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 아닌 세부 협의나 대통령 의지에 반하지 않는 사안에서는 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책 취지에 맞춰 인사 발령을 해둔 사람들은 노조를 대화파트너로 인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아직 이전 보수정권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무원 노조 단체교섭 재개, 공무원 성과연봉제 폐지 등에 원론적으로 찬성했지만, 실무적인 협의에서는 답답한 부분이 있다. 가끔 벽에 부딪힐 때마다 마치 이명박·박근혜를 다시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은 정권교체가 많이 체감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 대통령 임기가 지나고 대통령의 사고를 받아들이고 국민을 위해 정책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이 책임자가 되는 다음 정권쯤이면 많은 부분이 열리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공노총 위원장으로서 이것만은 꼭 완수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출마할 때 많은 공약을 내세웠지만 성과제 폐지, 단체교섭 체결, 공무원 노동조합법 개정, 이 3대 과제는 꼭 이루고 싶다. 특히 2005년 제정된 현행 공무원 노조법의 틀 안에서는 공무원이 제대로 자기 노동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현재 공무원 노조법이 특별법으로 되어있는데, 공무원들도 일부 민간 노동법을 적용받고 타임오프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 적어도 내 임기 내에 이런 것들을 끝내서 후배 공무원들이 정당하게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주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다. 직무 중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업무 외 상황에는 공무원들도 국민으로서 정치적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선거에 출마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그 친구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를 수 없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국가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는 국민이기도 하다. 공무원들도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와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아야 오히려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중앙·지방 권력이 선심성 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정책 입안 단계부터 견제·감시할 수 있는 것은 공무원 노동조합뿐이다. 공무원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노동조합이 활성화되는 것만이 공직사회의 자정과 대국민 서비스 개선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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