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성추문' 고은 시인이 첫 공식입장을 밝힌 가디언지 갈무리.뉴시스>

[이코리아] 고은 시인이 외신을 통해 성추행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이에 성추문을 최초 폭로한 최영미 시인이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상세히 밝히겠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영국을 방문 중인 고은 시인은 지난 2일 현지 출판사를 통해 가디언에 성명을 냈다. 가디언은‘시인 고은 성추행 폭로 뒤 한국 교과서에서 지워지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고은 시인이 상습적인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고은 시인은 “최근의 의혹들에 내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유감이며 나는 이미 내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몇몇 개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비행에 대한 비난은 단호하게 부인한다”고 밝혔다. 고은은 또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사실과 맥락이 바로 전달되지 않을 외국의 친구들에게 확언할 수 있다. 나 자신과 아내에게 부끄러울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명예 유지를 위해 계속 집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성추행 의혹이 불거진 후 고은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최영미 시인은 “언론에 보낸 글과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다.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상세히 밝히겠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최영미 시인의 폭로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이야기들>에서 ‘풍류탑골’을  2000년4월부터 50회 가량 민족문학인들의 뒷이야기를 연재했다는 한 모 씨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영미 시인의 주장이 거짓말이며 소설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한 씨가 밝힌 당시 상황에 대한 글 전문이다.

성 추문으로 사회가 요동을 친다. 썩거나 앓던 이는 언젠가는 뽑게 되어있다. 힘의 논리로는 강자가 약자를 추행하면 힘없이 당한 자는 일생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멍에로 끌려 다닌다. 성추행 폭로 고발자의 용기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이팅!~ 하라고,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 것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시인이 언급한 고은시인은 그런 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 것으로 안다.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담꾼 재담가다. 30년전 그 시절 문화는 섹시하다. 입술이 매력적이다. 맛있게 생겼다. 그런 농을 침을 흘려가면서 위안 삼아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정이 있던 밤문화 시절이 있었다. 최루탄 가루에 콧물 눈물 흘리고, 암울했던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대의 아픔과 새 희망을 노래하며 뜻을 함께 하는 문인들이 모여 그시대 그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 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 건 심한 것 같다.
  
8살만 되어도 아이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주고 각 가정에는 승용차 성인1대씩 소유하고 전국 팔도를 자유자재로 유람하고 세계여행을 내 땅 밟듯이 자유로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최첨단 문화왕국에서 금연지역 시각으로 희뿌연 30여년 전 벌어졌던 성희롱 발언들을 어떻게 부풀려도 너무 부풀려 마녀사냥 하듯 죽일 죄인을 만드는 것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거명요함. 문단에 물과기름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래야만이 자신이 주목받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희롱 내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직접적으로 당한적은 있는지?  
 
펙트로 근거를 올렸으면 한다. 여론에 휘말려 매장 당하게 하지 말고 정확한 펙트가 아니면 소설 그만 쓰고 반성할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사죄하길 바란다. 그렇게 소설 쓰면서까지 자신을 홍보하고 싶나? 문인이면 문인답게 좋은글로 독자들에게 평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설설설 갖고 진실인 것처럼 모든 이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지 말기를 ... 
 
그렇다하여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 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 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거두절미 하고 소설은 그만 쓰고 고은시인이 사회에서 지탄 받을 만큼 근거있는 기행 펙트로 밝혀 주기를...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간지에 1000자 분량 올린 글은 최영미 소설 이였다가 펙트다.
 
ㅡ참고로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으로서 ( 최영미 표현에 따르면 “ 술집마담 ” ) 최영미가 고발장에서 언급한 고은 시인의 그러한 자위행위 장면은 전혀 목격한 적이 없으며 10년을 넘게 그분을 지켜 보았어도 그런 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자들과 인터뷰하실 때도 농담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잡스럽거나 추행은 일절없이 목소리를 깔고 점잖으셨다.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기에  최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처럼 인용한 글  
ㅡ“ 아유 선생님두”  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소름끼친다. 나의 성격이 곰살부리는 여우도 아니고 거친 야생마 기질이 강한 내가 섹기 부리듯 ... 헐
 
ㅡ참고로 나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이야기들>에서 [풍류탑골] 2000년4월부터 50회 가량 민족문학인들의 뒷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고은시인이 만약 그러한 기행을 했다면 그 재미난 걸 왜 내가 연재할 당시 추가시키지 않았겠는가.  

최영미가 언급한 1992년겨울~1994년 봄 최시인이 문단에도 등단하기 전에 잘나가는 명망 높은 출판사 사람들 틈에 끼여서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 그는 고은 선생님과 함께 동석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었지 있을 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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