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총기규제 운동을 이끌고 있다. <사진='네버어게인' 공식 페이스북 계정>

[이코리아]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의 생존자들이 “총기와의 전쟁”을 이끌고 있다. 기존의 총기 반대론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10대들과 학부모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이들은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한 이슈 확산을 통해 총기 찬성파들과의 여론전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

생존 학생들은 사건 이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 "네버어게인"(#NeverAgain)이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열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한편, 총기 반대 메시지와 시위 계획 등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 ‘네버어게인’ 여론은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10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만든 ‘네버어게인’ 페이스북 계정은 개설된 지 수일이 지난 현재 약 13만6600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네버어게인’ 트위터 계정의 팔로워는 약 7만9800명이다.

외신들은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앱 사용에 익숙한 10대들이 이를 활용해 총기 반대 이슈를 계속 확산시키는데 탁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가디언은 지난 21일 “플로리다 학생들이 소셜미디어를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무기로 바꿨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더가디언은 “이들은 100명 당 88정의 총기가 보급된 나라에서 등교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젊은 목소리의 열정이 공포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CNN도 지난 22일, 전미총기협회(NRA)가 생존 학생들의 총기 반대운동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독특한 운동 전략을 꼽았다. CNN은 생존 학생들이 저항운동에서 ‘상징과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잘 확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생존 학생들이 ‘네버어게인’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총기 반대 여론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이슈에 대한 높은 관심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총기규제’(Gun Control)에 대한 관심도를 구글 트렌드를 통해 살펴본 결과, 14일 사건 발생 이후 급상승한 뒤 현재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 주요 언론매체에서도 생존 학생들의 움직임이나 총기 규제 문제가 지속적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사건 발생 며칠 뒤 관심이 수그러들었던 타 사례와는 다른 모습이다.

생존 학생들이 소셜미디어 상에서 이끌고 있는 총기 규제 운동으로 인해 여론의 관심도 식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자료=구글 트렌드>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10대들인 만큼 보수 여론에도 즉각적으로 대응하며 오히려 여론 확산을 위한 반전의 기회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잭 킹스턴 전 공화당 상원의원(조지아)은 최근 “17살짜리들이 스스로 전국적인 행진을 계획했다고 생각할 수 있나”라며 생존 학생들이 조지 소로스 등 총기 반대파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음모론을 펼쳤다. 그러자 생존 학생 중 한 명인 사라 채드윅은 트위터를 통해 “맞다 우리 17살짜리들은 진짜 전국적인 행진을 계획 중이다. 강한 결단력과 직업윤리가 이르게 될 결과는 대단하다. 당신은 그 두 가지 모두 가지지 못했으니, 이해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맞받아쳤다. 이처럼 소셜미디어 활용에 익숙한 10대들은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보수 여론에 끌려 다니지 않고 즉각 반박하면서 호의적인 여론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생존학생들은 심지어 올해 예정된 중간선거 후보자들 중 총기 문제와 관련해 특별히 주목해야 할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배포하는 등 영리하고 빈틈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생존 학생들의 소셜미디어 전략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지속성과 반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매번 소셜미디어에 광범위한 규제 여론이 불었지만 실질적인 법률 개정에 이른 역사는 없다며, ‘네버어게인’ 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WP가 인용한 위스콘신대학교 연구팀의 미발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2~2014년 59개의 총기 난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총기 규제 여론은 사건 발생 수일 이후 점차 잦아드는 패턴을 보였다. 사건 수일 뒤에는 점차 총기 소유를 지지하고 법률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소셜미디어 상에 나타나면서 결국 여론이 다시 이전의 팽팽한 균형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것.

게다가 사건 발생 이후 러시아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봇’ 계정들이 다수 출현해 논란거리가 됐다. ‘봇’ 계정들은 '#guncontrolnow'(건 컨트롤 나우), '#gunreformnow'(건 리폼 나우), '#Parklandshooting'(파크랜드 총격)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수백 건의 트윗을 올리며 총기 사건과 관련된 뉴스를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9일 관련 내용을 보도하며 “이러한 ‘봇’ 계정들은 거의 시스템적으로 미국을 분열시키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봇’ 계정은 총기 규제를 지지하든 반대하든 생존 학생들의 메시지를 희석시킬 여지가 있다. 또한 총기소유 찬성파가 소셜미디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봇’ 계정을 통해 음모론이나 가짜뉴스를 전파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현재 생존 학생들이 중심이 된 ‘네버어게인’ 운동은 3월 24일 워싱턴DC에서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행진을 벌이겠다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 계획을 전파하고 있다. SNS를 통해 새로운 운동 전략을 실험하고 있는 미국 10대들의 목소리가 과연 오랜 총기 찬반 논쟁에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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