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이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및 대우건설 매각 무산 등에 대한 책임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답변 중인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매각 실패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등 잇따른 악재로 곤경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상황 악화를 예견하고서도 수수방관했다며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 대우건설, 부실 모른 채 무리한 매각 추진

산은은 지난달 31일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며 대우건설 매각 절차를 진행했으나, 지난 8일 호반건설이 매수를 포기하면서 결국 무산됐다. 지난해 4분기 발생한 해외손실액 3천억원이 문제였다. 호반건설은 자사의 연 매출액 3분의 1에 해당하는 손실액과 잠재적 부실 가능성을 우려해 결국 발을 뺐다.

이동걸 산은 회장 또한 지난 19일 대우건설 임원들에게 회생 방안을 제출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매각 무산 원인인 해외손실 보고가 지연된 이유 및 해외사업장 전체에 대한 부실가능성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했다. 호반건설에 대한 매각 시도는 실패했지만, 최대한 빨리 대우건설을 정상화시켜 재매각에 나서겠다는 것.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 실패가 매각 과정을 무리하게 추진한데다 부실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산은의 책임이라며, 반성 없는 매각 재추진의 성공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산은은 지난 10월 대우건설의 추가실적을 반영하기 위해 당초 매각 공고일을 2주나 미루며 몸값 올리기에 애썼지만, 호반건설의 예비입찰가는 산은이 지분매입에 투자한 3조2천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조4천억원이었다. 그나마 단독 입찰한 호반건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호반건설이 제기한 3년간의 분할인수안 또한 받아들였다.

결국 이렇게까지 애써 추진해온 매각은 갑자기 발견된 해외손실로 무산됐다. 산은은 대우건설의 실적 발표 전날에야 해외손실액 규모에 대해 보고받았다며, 부실을 숨기고 매각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명이 맞다고 해도, 대우건설의 부실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산은의 경영관리능력 부족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경영간섭을 자제하다보니 부실문제 파악이 늦었다는 변명도 통하기 어렵다. 산은에서 30년간 근무하며 요직을 거쳐 온 ‘산은맨’ 송문선 전 부행장을 지난해 8월 대우건설 사장으로 임명했기 때문. 산은은 본사 출신을 비금융계열 자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로 임명하며 연결고리 역할을 맡겨왔다. 건설업 경험이 전무한 송 사장을 보낸 것도 같은 이유.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연결고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산은은 부실 규모는 물론 부실의 존재 자체도 알지 못한 채 매각에 나서 실패했다.

◇ 한국GM 철수 예견하고도 끌려 다녀

최근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한 한국GM 문제에 있어서도 산은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2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GM의 재무상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끌려 다닌 것도 문제지만, 철수 논란을 예견하고서도 오히려 지분매각을 통해 출구전략을 고심하는 모습만 노출했기 때문이다.

산은은 한국GM 지분 17.02%를 보유한 2대 주주로 상법상 회계장부를 열람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만약 산은이 이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왔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글로벌GM의 한국GM에 대한 적자 떠넘기기, 고이율 대출 등의 사안도 군산공장 폐쇄라는 극단적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공론화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산은은 지속적인 적자에도 불구하고 경영간섭을 시도하지 않았으며, 불충분한 경영자료 제공에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산은은 지난해 3월 주주감사 청구권을 행사해 한국GM 측에 경영자료를 요구했으나, 116개의 자료 중 겨우 6개밖에 제출받지 못했다. 이는 실질적인 감사 거부에 해당하지만 산은의 추가 대응은 찾아보기 어렵다. 산은은 이사회 10명 중 3명에 대한 추천권도 가지고 있으나 결정이 과반수로 이뤄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산은 이동걸 회장도 “소주주로서 대주주의 모든 행동을 견제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지난 7월 산은이 작성한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산은은 GM의 철수 움직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구전략만 고심해온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에서 산은은 “해외시장 철수 단계적 실행, 자체생산 축소, 수입판매 증가, 기타 구조조정 움직임 등 철수 징후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GM의 최근 수년간 해외 철수 흐름으로 볼 때 글로벌 사업재편 전략이 '선택과 집중'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당 보고서는 이어 “정부의 정책적 입장(매각보류) 반영으로 현재 매각 검토 보류상태이나, GM지분 매각 제한이 해제되는 2017년 10월 이후에는 당행도 출구전략 모색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 작성시기가 산은이 보유한 비토권 만료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임을 고려할 때 산은이 한국GM 정상화보다 보유지분 매각에 골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산은은 지난 2010년 GM본사와 합의를 통해 공동개발한 기술의 공동소유권을 확보했다며 GM이 철수해도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으나, 이마저도 의심을 받고 있다. 합의 이후에도 GM본사는 매년 약 700억원의 기술료를 받아갔으나, 한국GM의 기술료 수입은 80%나 줄어들었기 때문. 공동소유권에도 불구하고 기술료 수입이 지나치게 차이 나는 것에 대해 산은이 불리한 부분을 빼고 발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산은은 비밀유지 협약을 이유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이런 이유로 해당 사안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의 문제점이 경영진의 관리 능력 부재 때문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 가려내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제2의 대우건설, 한국 지엠 철수 사태가 반복될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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