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9일 오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북미대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방문 기간 동안 보여준 외교적 실책을 지적하며, 북미대화의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펜스 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를 원하면 대화하겠다”며 “최대의 압박 전략과 관여를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토 웜비어의 부모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탈북자들과 면담을 가지며 북한의 인권문제를 비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이번 발언을 두고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이 ‘대화’ 중심으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 현지 언론들은 펜스 부통령의 발언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방문 기간 보여준 외교적 결례를 지적하며, 북미관계 개선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고 비난하고 있다.

CNN은 지난 12일 펜스 부통령의 평창 동계올림픽 방문에 대해 “잃어버린 기회”라고 표현했다. 김정일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참석으로 북미관계 개선의 호기가 주어졌지만, 시종일관 회피하는 태도로 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렸다는 것. CNN은 북한과 가까운 외교소식통과의 인터뷰를 근거로, 펜스 부통령이 개막식에서 남북 공동 입장 시 기립하거나 박수도 치지 않고 앉아서 굳은 얼굴로 지켜본 것은 품위없는 행동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아주 작은 존중의 제스처만 있었어도 북미 간의 외교적 소통을 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는 양국 간의 신뢰 증진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펜스 부통령이 ‘성정치’의 측면에서도 큰 실책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WP는 펜스 부통령이 미국에서 소위 ‘남자다운’ 정치인의 전형이며 여성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펜스 부통령은 지난 2002년 아내가 아닌 여성과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여성을 동료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WP는 펜스 부통령이 김 부부장을 건너뛴 채 국가 지도자들이 앉은 테이블을 빙 둘러간 것이나, 굳은 얼굴로 불편한 태도를 보인 것은 단순히 북한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여성을 무시한 것과 같은 인상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인 미국 사회에서 펜스 부통령이 상대 국가의 여성 대표에게 보인 무례한 태도는 ‘성정치’라는 측면에서도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WP는 펜스 부통령에 대해 “미국이 보낼 수 있었던 최악의 인사”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방문 기간 보인 태도 문제로 인해 북미 대화의 가능성도 더욱 낮아졌다는 의견이 많다. CNN은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 백악관이나 국무부와 협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CNN은 또 틸러슨 국무장관은 조건없는 대화를 지지하지만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은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인터넷매체 복스(VOX)도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 트럼프 정부의 대북 입장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미국 내 고위 안보관계자들이 북미 대화를 지지한다고 수차례 밝혀왔지만, 그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노력을 폄하하는 발언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틸러슨 국무장관이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의 첫 번째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있다”고 말하자, 백악관은 곧바로 “북한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은 변함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같이 강경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북미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평창올림픽 기간 지속된 평화가 폐막식과 함께 깨질 것이라고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예일대학의 북한 전문가 미라 랩-후퍼 연구원은 복스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이후) 북한이 군사실험을 한다면 협상 과정도 궤도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 군사훈련의 재개가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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