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인하여 기존의 아날로그 산업들이 거대한 디지털 쓰나미에 쓸려나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은 소시민들에게는 벌써부터 실직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다. 지난 1월 실업급여 신규신청자가 15만명으로 사상 최대가 되면서 실업에 대한 걱정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라질 것만 같았던 아날로그 기술들 중 턴테이블과 LP판은 다시 인기를 얻고 있고, 티몬에 의하면 지난 연말 손으로 작성하는 다이어리의 판매가 전년대비 38%가 증가했고, 옥션에 따르면 만년필 판매는 전년대비 19배나 늘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디지털 공습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활용과 거리가 먼 전통적인 아날로그 기업의 성장은 지속될 것이며, 양자의 공생은 계속될 것이다. 이글에서는 디지털혁명이 아마존의 밀림과 아프리카의 초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새롭게 조명 받는 아날로그의 미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인도와 아마존까지 전파된 디지털 혁명

파괴적 디지털 기술의 전파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심지어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있었던 인도마저 변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14여년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하여 인도 델리 근처의 구르가온에서 근무했다. 퇴근할 때에는 인도인 직원이 친절하게 인력거를 불러주었다. 필자가 힌디어로 직접 협상하면 상당한 외국인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현지인이 협상한 후탑승하도록 한 것이다. 단돈 1,000원도 되지 않는 돈을 받기 위하여 인력거 기사가 밟는 페달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이 흘러 IT기술의 발달로 인도에서도 다수가 카카오택시와 유사한 앱을 이용하여 인력거나 오토릭샤를 부른다. 관광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의 남이섬이나 북촌의 인력거를 운전하는 기사들과 인도의 인력거 운전자들이 이제는 기능이 동일한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고객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거주했던 브라질에는 아마존을 여행하는 상품이 많았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비행기를 향하여 활을 쏘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일부 아마존의 원주민들도 문명의 세계에 점차 동화되어 스마트폰 하나쯤은 장만한다고 한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주민들이나 태평양의 일부 섬나라주민들도 유선전화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한국처럼 은행을 쉽게 찾기 힘들지만 스마트폰으로 대금을 결제하고, 주민들의 문자메시지와 SNS이용내역으로 개인의 신용도까지 평가하고 있다.

 

디지털소음과 아날로그가 주는 미학

현대인들은 누구나 디지털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업무용 메일주소에로 매일 쏟아지는 스팸메일이 가득하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는 이미 비자금을 현금화시켜주면 사례를 하겠다는 가짜 메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인터넷에는 광고수입을 얻기 위한 가짜 뉴스들이 증가하고 미군 병사를 가장한 페이스북 계정까지 등장했다. 항공사를 가장한 가짜 여행티켓 이벤트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디지털 기기가 없으면 심각한 금단증상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디지털 소음에 잠겨 있는 우리들은 아날로그가 주는 미학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된 지난 50년의 세상은 디지털기기들이 크게 변화시켰지만 인류의 몸과 인간의 마음은 빛의 속도에 맞추어 빠른 속도로 변화하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와의 향상된 대화능력이 요구되지만 소프트웨어 코딩 작업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전히 정신적인 막노동에 불과하다.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쉬지도 지지지도 않는 기계와의 대화를 멈추고 잠시 명상에 잠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첨단 IT기업에 종사하는 임원일수록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는 휴양지를 선호하는 사례가 증가한다. 원형고리 모양의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애플의 실리콘밸리 새 사옥은 원형구조 가운데 거대한 숲을 조성했고, 페이스북의 옥상에 있는 400그루 이상의 나무들을 심었고,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새들까지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환경을 생각했지만 직원들도 배려한 현명한 조치였다. 뉴턴의 만유인력과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는 산책이나 목욕 중에 발견되었고, 정신적은 휴식은 결국 새로운 창조를 낳는다.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푸른 자연에 동화해왔다. 우리의 눈은 LED 백라이트가 뿜어내는 푸른 광선보다는 맑은 녹색이나 붉은 흙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 지나친 청색광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자연적인 수면흐름까지 망가트린다.

작년 지드래곤이 음원은 없고 USB만 달랑 들어있는 음반을 출시하자 일시적인 LP 복고바람이 불기도 하였다. 가격은 비싸지만 LP로 유통되는 음원은 음악뿐만 아니라 외장재가 풍기는 아름다움, 턴테이블에 LP를 얹는 즐거움, 바늘을 옮기는 신선함까지 덤으로 선사해준다. 32비트 음원에서는 덜하지만 16비트 음원에서는 디지털로 녹음하는 과정에서 사라지는 부분도 존재한다. 최신의 블록체인 기술은 불법복제를 줄이기 위해 디지털로 유통되는 음원에까지 꼬리표를 붙여 추적할 수 있도록 한다. 가상현실과 홀로그램기술은 인기가수의 공연을 집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아날로그 녹음실에서의 고전적인 녹음과 가수의 열창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콘서트를 원한다.

업무상 필자는 아직도 주요 언론의 기사를 온라인이 아닌 전통적인 신문으로 읽는다. 온라인 기사에서 간과했던,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종이 신문에서는 찾아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종이 신문이 제공하는 회색의 차분함은 놓치기에는 여전히 아까운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11월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의 45.1%가 1년에 책을 한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책장을 넘기며 읽은 종이책은 전자책이 주지 못하는 감흥을 전달할 때가 있다. 한국인들이 계속 아날로그 책을 내려놓는다면 체계적이고 심도 깊은 사고를 하는 힘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교육에서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필자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초등학교를 방문한 결과 경제적 여건으로 교과서를 구매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대문에 1층으로 된 학교 건물벽면에는 교과서 내의 삽화가 빈틈이 없도록 페인트로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화된 국가에서는 초·중등학생의 교육을 위하여 스마트패드 보급에 열중한다. 그런데, OECD의 보고서를 보면 스마트패드의 보급이 학업성취도와는 큰 영향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과 소셜미디어를 성공적으로 차단하지 못할 경우, 스마트패드는 오히려 학업에 방해가 되는 물건으로 인식되었다.

 

아날로그가 선사하는 가치와 권위

실리콘밸리에 첨단기업들이 즐비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명함을 만들고, 인쇄홍보물을 제작한다. 이미 NFC통신 기술로 명함을 간편하게 주고 받을 수 있고, 홈페이지의 URL이 명함보다 훨씬 많은 것을 선사하지만, 직접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담은 명함집은 또 다른 가치를 제공한다. 일본의 첨단 IT기업들은 아직도 수십년전에 통용되었던 것과 같은 스타일의 한자가 세로로 쓰여진 흑백의 고풍스러운 명함을 사용한다. 아날로그가 제공하는 가치와 권위를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기업이 아닌 첨단 IT기업들도 여전히 고풍스러운 기업 카다로그를 제작한다. 디지털 매체는 잠깐 보고 쉽게 잊힐 수 있지만, 아날로그 인쇄물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영자층에 더 높은 비율로 전달된다.

얼마전 대법원은 공소장에 CD 등으로 첨부한 내용은 공소장의 일부로 볼 수 없다고 원칙적인 판결을 내렸다. 서초구청에서 2016년부터 부동산 매매를 전자문서로 하는 부동산전자계약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실시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은 종이로 하는 것을 선호한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가 제일 먼저 퇴출될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날로그 종이가 주는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거래내역을 제2, 제3의 백업센터까지 두며 백업하지만, 디지털 정보의 휘발성에 대한 우려는 아직도 일부 업종에서는 계속 아날로그 기법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O2O비지니스와의 조화

O2O비지니스는 온라인 사업이 오프라인을, 오프라인 사업이 온라인을 추구하는 경우를 모두 지칭한다. 스마프폰은 우리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도구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것을 여전히 선호한다. 오프라인 시장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애플은 주요 도시에 거대한 애플샵을 운영한다. 구글은 구글샵을 선보였고, 아마존도 아마존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서적판매로 유명한 Yes24가 오프라인 중고서점을 직접 개설했다. 오프라인 매장의 가격은 오프라인보다 비쌀지 모르지만 한가한 주말 제품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물건을 구매하는 즐거움을 고객들에게 선사해준다.

비즈니스의 핵심은 바로 돈을 벌고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매월 3억명의 활성화된 이용자가 이용하는 트위터는 2013년 상장한 후 매년 5,0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내다가 지난해에야 겨우 흑자를 냈다. 소셜커머스 업체로 유명한 업체인 쿠팡은 1.9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20개에 가까운 물류센터를 운영하지만, 5,900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국제적인 M&A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순자산이나, 수익성, 시장에서의 대체가치로 평가 받는다. 빅데이터 등에 대한 성장성의 기대감으로 현재 관련 기업을 시장에 진입시키기 위하여 투입되는 대체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전당포사나이들이란 미국 TV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주인 할아버지는 감히 “인터넷도 유행이야”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단순한 유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디지털 혁명은 이미 우리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오프라인 비즈니스는 지속적으로 온라인을 추구한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네트웍이 없이도 잘 돌아가고 성장하는 사업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파괴적 혁신기술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지만 인간은 여전히 아날로그가 주는 즐거움을 원하고 있다. 가끔씩은 스마트폰을 끄고 디지털 소음에서 벗어나 숲속에서 아날로그의 미학을 즐길 필요가 있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직접 대화를 나눌 가치가 있다,

 

여정현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주)명정보기술 산호세법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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