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근로시간 단축방안에 대해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사진은 마트산업노조 대전본부가 지난해 12월 이마트 측의 근로시간 단축안에 대해 "인력충원과 임금상승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꼼수"라며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면서 이에 대한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생산성 향상 없는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에게 지나친 부담이라며 정부의 속도내기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은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필수 조치라며 재계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OECD가 지난해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간 평균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35개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평균인 1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은 것으로 1일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계산하면 OECD 평균보다 38일 더 일한 셈이다. 반면 실질임금은 3만2399달러로 전체 평균인 4만2786달러의 76% 수준에 그쳤다.

더 일하고 덜 받는 국내 노동여건 상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요구는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다. 하지만 기존 근로조건에 익숙한 기업들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저임금·근로시간 조정에 따르는 비용을 기업들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 기업 “부담 늘어난다” 난색

특히 근로시간 단축의 경우 휴일수당 중복할증 등의 문제가 겹쳐 재계로부터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현재 정부가 고려 중인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현행 주당 68시간(5일 근무 40시간, 휴일 근무 16시간, 연장 근무 12시간)의 근로시간을 52시간(7일 근무 40시간, 연장근무 12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기존에는 주중 연장근무에 50%, 휴일 근무에 50%의 가산 수당이 따로 나갔지만, 정부안대로 근로시간이 변경되면 휴일 근무시 연장수당과 휴일수당을 같이 지급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휴일수당 중복지급 문제가 노동계의 요구대로 판결될 경우, 재계는 그동안 지급하지 않았던 휴일·연장근로수당 3년치 소급분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18일 대법원 공개변론에서 수당 소급분이 약 7조8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소·영세기업들도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추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견딜 수 있는 대기업과는 달리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수 있다는 것.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30인 미만 중소기업에 한해 노사합의 시 추가로 주당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기업의 체급차이를 반영해 유예사항을 도입해달라는 것.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박 회장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며, 정부도 50인 미만 기업에 대해 2021년 7월까지 근로시간 단축 유예기간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를 고민하고 있지만 이들의 우려를 모두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 고용 창출, ‘워라벨’… 긍정적 효과

반면 노동계에서는 재계의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휴일수당 소급분에 대한 경총의 추정치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40% 가량 과장됐다는 평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22일 발표한 ‘주52시간 상한제의 사회경제적 효과’에서 이미 중복할증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늘어난 인건비로 절감되는 법인세 등을 고려할 때 실제 기업 부담은 약 5조원 정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경총이 모든 노동자를 3년 근속으로 가정한 것부터 잘못이라며, 임금총액 감소 및 생산성 향상 등의 효과도 고려하지 않은 불확실한 추정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이 가져올 일자리 창출 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4년 주40시간제 도입이 고용 창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가 다수 나와있다. 서울과학기술대 노용진 경영학과 교수가 지난 2014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40시간제 도입이 전체 고용자 수 증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으며, 실근로시간도 4시간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확보를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있는 정부에서도 이처럼 고용효과가 확인된 근로시간 단축방안을 철회할 가능성은 낮다.

◇ 근로시간 단축, 부작용 해소가 선결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은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지만,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중소기업의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3년 현대차는 주간연속 2교대제(8시간+8시간)를 도입하면서 근로시간을 단축한 바 있다. 당시 교대제 전환 과정을 지켜봤던 한 관계자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1차 하청까지는 근로시간 단축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2차, 3차 하청으로 내려가면 사정이 다르다”며 영세협력업체들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모가 큰 원청이나 1차 하청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과 라인 증설 등을 통해 생산물량을 보전할 수 있지만 영세한 협력업체의 경우 그럴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마트산업노동조합은 최근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신세계 그룹에 대해 “노동강도는 늘리고 임금 부담은 줄이려는 꼼수”라고 지적했다. 월 소정노동시간이 줄어들면 기본급을 늘리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최저임금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산업노조가 향후 이마트 월 급여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9년부터는 최저임금보다 적은 급여를 받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창출 효과도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 충원보다 노동강도 강화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 앞서 언급한 현대차 사례의 경우, 사측에서 임금을 보전하는 대신 노측에서도 줄어든 근무시간 동안 이전과 동일한 물량을 생산하기로 약속하면서 추가적인 인원 충원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고용 창출을 위해 근로시간을 줄였는데 기존 근로자들의 노동강도만 강화된 것. 이마트의 경우도 지난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직고용 인원이 줄어들고 있으며, 주35시간제 도입 이후에도 추가적인 인력충원 계획은 발표하지 않았다.

삶의 질 향상과 고용 증대를 위해 근로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변화다. 하지만 근로시간 단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에 따르는 부차적인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모처럼 도입한 제도가 예상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실질적인 국민 삶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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