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판결에 대한 비난여론이 확산되면서 삼성이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사회환원, 지배구조 개선, 국내 투자 등 다른 재벌 총수들이 여론 전환을 위해 뽑아들었던 카드들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 부회장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5일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자, 재판 결과를 두고 ‘정경유착’이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심 재판부를 이끈 정형식 판사에 대한 파면 요구가 줄을 잇고 있다. 정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청원은 8일 현재 청와대 답변요건인 동의 인원 20만명을 넘어섰다.

2심 판결로 한숨 돌린 삼성이지만 이처럼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그룹이미지 악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부회장도 여론을 의식한 듯 공식 활동을 자제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서초사옥에도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특별한 입장 발표 없이 여론 전환용 카드를 모색하기 위해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서 삼성이 내밀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카드는 사회 환원이다. 개인 재산을 출연해 공익적 목적으로 기부하겠다는 약속은 재벌 총수들이 그동안 자주 사용해온 국면전환용 수단이다.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경우 2006년 횡령 및 배임혐의로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보유 주식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 회장은 실제로 2011년까지 약 6500억원 규모의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현대차정몽구재단’에 출연했고, 2013년에는 이노션 지분 20%(약 1천억원 규모)도 출연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사회환원을 여론전환용 카드로 꺼내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도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 이건희 회장은 삼성특검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08년 1조원 이상의 차명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분 0.15%(약 1500억원)을 삼성꿈나무장학재단에 출연한 것을 제외하면 사회 환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유익한 곳에 쓰겠다”던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자산은 10년이 지난 현재 2조1천억원에서 약 6조원으로 세배 가량 불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사회환원을 거론할 경우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여론 전환용 카드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혐의가 발생한 만큼, 지배구조 개선은 악화된 여론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 될 수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데다 특검 측도 대법원 상고를 선언한 만큼, 이 부회장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이 부회장은 적은 지분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데,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순환출자구조를 공정위 요구에 맞게 해소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금융위가 지난 1월 발표한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 도입방안’도 큰 압박이다. 이 조치는 계열사간 출자를 자본적정성 평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처리해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다만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자발적 개선이 미흡한 그룹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부회장이 이 달 안에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이 부회장의 또 다른 카드 하나는 대규모 국내투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경영위원회를 열고 30조원 규모의 평택 반도체라인 증설 계획을 결정했다. 대규모 국내 투자는 고용 창출, 내수 진작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내세워 여론 전환을 노릴 수 있는데다, 자연스럽게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카드다. 일각에서는 평택 공장 증설계획과 함께 이 부회장도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 결정은 중국 반도체산업에 대응하기 위해 이전부터 논의된 것으로 이 부회장의 출소시점과 우연히 겹치게 된 것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투자 계획 발표와 함께 여론 전환과 경영 복귀를 함께 노렸던 이전 재벌 총수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 SK 최태원 회장의 경우 지난 2015년 8월 출소한 뒤 SK하이닉스에 46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경영 복귀를 알린 바 있다. 반면 이 부회장은 증설 계획이 거론되기 시작한 6일 이후에도 공식일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삼성으로서 가장 확실한 여론 전환 카드는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이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심·2심 재판 당시 이 부회장은 “앞으로 그룹 회장이란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며 부친 이 회장과는 달리 그룹 총수의 역할은 내려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IT업계의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겠다”며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의 경영은 직접 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여론이 점차 ‘안티-삼성’으로 기울어가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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