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3일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을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핵군축과 비확산을 강조한 오바마 전임 정부와 달리 한층 강경한 핵전략을 담고 있다. <사진=미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미 국방부가 지난 3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핵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 NPR)를 공개했다. 핵태세 검토 보고서는 지난 1994년 클린턴 정부에서 처음 작성된 이후 8년 주기로 발행돼왔으며, 이번이 네 번째다. 이 보고서는 미국 핵전략의 방향을 제시하는 의미를 지니며, 보고서에 따라 구체적인 핵 관련 정책과 예산이 결정된다.

트럼프 정부가 발간한 이번 NPR은 현 상황을 불확실성이 증대한 위험상태라고 규정하며 핵전력의 유지와 보수를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오바마 정부와 뚜렷한 차이가 있다. 오바마 정부가 지난 2010년 발행한 NPR은 핵전력 감축과 비확산 정책의 추구를 기조로 삼았기 때문. 트럼프 정부의 이번 보고서는 오바마 정부보다는 2002년 부시 정부 NPR의 ‘반’ 확산 정책과 더 닮아있다.

◇ 오바마 “핵군축”, 트럼프 “핵증강”

오바마 정부는 NPR을 발간하기 1년 전인 2009년 4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상”을 천명하며 핵전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2010년 발간된 NPR 또한 오바마 정부의 일관된 핵군축 기조를 구체적으로 문서화한 것으로, 핵무기의 비중을 차츰 줄여가는 한편 재래식 무기를 통해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서술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NPR을 통해 전략핵탄두를 기존 대비 30% 감소한 1550개로, 전략핵운반체계는 기존 대비 50% 감소한 700개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오바마 정부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핵심 기조로 내세워 핵무기의 숫자뿐만 아니라 역할 또한 축소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소극적 안전보장이란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핵 선제타격을 공공연히 언급한 이전 부시 정부와는 상반되는 정책이다. 이들 국가가 미국 및 우방국에 대해 핵무기가 아닌 다른 무기를 통한 공격을 시도할 경우 미국 또한 재래식 전력으로 대응하겠다는 것.

반면 트럼프 정부의 이번 NPR은 ‘소극적 안전보장’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으로, 재래식 전력에 의한 위협에도 핵무기로 대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NPR에서 “의미 있는 비핵전략 공격을 포함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핵미사일 장착 잠수함(SSBN),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로 이뤄진 오바마 정부의 핵전략 삼위일체는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세부적으로는 수량을 증대하는 한편 신무기로의 교체를 서두르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NPR은 향후 최소 12개의 SSBN을 선보이는 한편, ICBM 시설의 현대화, 신형 전략폭격기로의 교체, 기존 중력폭탄의 수량 유지 등의 계획을 담고 있으며, 이를 위해 현재 국방비의 2~3% 수준인 핵 예산을 6.4%까지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핵무기의 역할 자체도 강화될 전망이다. 이번 NPR에 여러 번 언급된 ‘저강도 핵무기’의 존재 때문이다. 저강도 핵무기는 목표 지역을 타격하면서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폭발력을 낮춘 핵무기를 의미한다. 이는 적 수뇌부 및 핵심 군사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통해 힘의 차이를 과시하는 ‘코피’ 전략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실전에서 사용가능한 핵무기 개발을 통해 억지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2018년 미 핵태세 검토 보고서 표지 사진. <사진=미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 러·중 동반자 → 잠재적 위협

국제협력을 통한 핵확산 방지는 오바마·트럼프 정부 모두 강조하고 있지만, NPR에서 드러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양 정부의 시각은 크게 다르다. 오바마 정부는 NPR에서 핵테러리즘과 핵확산을 가장 큰 위협으로 지목한 반면, 러시아와 중국 등의 핵보유 국가는 그 다음 단계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NPR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현실적인 위협으로 간주해 해당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2010년 NPR은 “미·러 양국의 정책이 다르고 러시아가 지속적으로 핵전력을 현대화하고 있지만, 미국과 러시아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며 “양국은 핵테러리즘과 핵확산 방지를 포함해 협력을 강화해왔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해서도 “미·중 양국의 상호 의존성은 강화되고 있으며, 대량학살무기의 확산과 같은 전지구적 위협에 대해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 핵확산 방지를 위한 동반자적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트럼프 정부의 2018 NPR은 “미국이 핵무기의 수와 현저성을 줄이는 동안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는 정반대 행보를 보여 왔다”며 러시아와 중국을 현재 불확실한 안보상황을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러시아에 대해서는 무기통제조약과 관련해 의무와 약속을 거부·회피하고 있으며 감축을 추구하는 미국의 노력을 우롱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한 러시아가 저강도 핵무기를 포함한 비전략적 핵무기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강화하고자 한다면서, 이러한 러시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북한 관련 서술 대폭 증가

이번 NPR의 특징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서술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도 북한에 대해서는 소극적 안전보장 전략의 예외국가로 지정하고 적대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고 있는 북한, 이란과 같은 국가 들은 근본적으로 핵공격 배제대상에서 제외되었다”며 “이러한 범주의 국가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의 NPR에는 북한이라는 단어가 겨우 4번밖에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그 비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NPR에는 목차와 도표를 포함해 50번 가량 북한이 언급된다. 또한 이전 NPR과는 달리 북한에 대한 챕터까지 따로 정리해 북핵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이번 NPR에서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핵공격은 북한 체제의 종말이 될 것”이라며 북한의 핵보유 및 타 국가·단체에 대한 핵무기 유출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 함께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전력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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