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 대한 언론보도가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이코리아]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고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반복 사용하는 등 언론이 ‘2차 피해’를 끼친다는 지적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리아>는 ‘여검사 성추행’, ‘검사 성추행’, ‘검찰 성추행’ 등 다양한 검색어를 사용해 서 검사의 폭로 이후 주요 일간지들의 보도 형태를 살펴봤다. 조사 결과 다수의 언론에서 ‘여검사 성추행’과 ‘검찰 성추행’이라는 제목이 혼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 조선·동아, ‘여검사 성추행’, ‘검찰 성추행’ 혼용

조선일보의 경우 “대검, '여검사 성추행' 등 검찰 내 성범죄 전면 조사”, “최교일, 여검사 성추행 논란 서지현 검사 전혀 몰라”, “문무일, 여검사 성추행 사건, 철저히 조사해 응분의 조치” 등 피해자를 부각시킨 제목과 “'검찰 내 성추행' 조사단장은 1호 女검사장”, “법무부, 검사 성추행 의혹, 진상 조사 지시”처럼 가해자나 사건 배경을 명시한 제목을 모두 사용했다.

동아일보는 “결국 터졌다… 여검사 성추행 폭로에 검찰 뒤숭숭”, “대검, ‘여검사 성추행’ 감찰 돌입…별건 성폭행도 조사” 등 주로 ‘여검사 성추행’을 제목으로 사용했으나, “‘검찰 내 성추행 사건’ 지휘봉 조희진 지검장, 누구?”, ‘검찰 내 성추행’ 가해자 지목 안태근 전 검사 “술 마신 상태라 기억 없어” 등 가해자를 명시한 기사 제목도 일부 눈에 띄었다.

◇ 중앙·한국, ‘여검사 성추행’ 일변도

반면 중앙일보의 경우 대부분의 기사에서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문구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중앙일보가 해당 사건과 관련해 보도한 기사 제목은 “2015년에도 여검사 성추행 의혹 … 검찰, 사표 받고 덮었다”, “'여검사 성추행' 안태근 간증했던 교회 측이 밝힌 입장”, “"그놈 때문에 아이도 유산" 성추행 여검사 분노의 일기” 등으로 ‘여검사’라는 단어를 사용해 모두 피해자를 부각시켰다. 반면 검찰 내 성추행, 검찰 성추행 등의 제목은 검색 결과 발견되지 않았으며 사설에서만 “검사 성추행 의혹, 대충 덮으려 해선 안 된다”라는 중립적인 제목을 사용했다.

한국일보 또한 “'검찰 내 성추행' 폭로 서지현 검사, 당시 법무부장관도 동석”이라는 기사를 제외하면 모두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한국일보가 검찰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사용한 기사 제목은 “여검사 성추행 묵살 의혹 최교일, 은폐한 적 없다”, “문 대통령 여검사 성추행 비판”, “법무부,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 검찰에 엄정처리 지시” 등이다.

◇ 한겨레·경향, ‘검사 성추행’으로 제목 통일

한겨레는 성별을 강조하지 않는 ‘검사 성추행’이라는 중립적인 문구를 주로 사용했다. 한겨레는 대검의 진상조사단 구성에 대해 ‘여검사 성추행 진상조사단’이라고 보도한 타 언론과는 달리 “대검, ‘검사 성추행’ 진상 조사단 구성”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 밖에도 한겨레는 “안태근 성추행 사건 ‘왜 들쑤시냐’ 호통친 인물은 최교일 의원” 처럼 가해자를 적시한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무일, 여검사 성추행 의혹, 응분의 조치”, “최교일, 여검사 성추행 은폐 의혹에 왜 날 끌어들이나” 등 일부 기사에서는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경향신문의 경우 검색 결과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검찰 성추행 사건에 대한 경향신문의 보도는 모두 ‘검사 성추행’이라는 동일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일부 보도에서는 “대검, ‘검찰 고위간부 성추행’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구성”, 여성단체,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 등 가해자를 강조하는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경향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철저한 진상조사를 약속했다는 내용의 보도에서 유일하게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않은 언론이다. 경향은 해당 내용을 문무일, “검사 성추행, 철저한 진상조사 후 응분의 조치 취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최교일 의원이 ‘여검사 성추행’ 은폐 의혹을 부인했다는 내용의 기사에서도 ‘여검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최교일, 성추행 은폐 (주장은) 명예훼손죄 강변”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MBC는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가 책임소지를 흐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이런 보도 행태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도 있었다. MBC는 지난 1일 8시 뉴스에서 “언론에서 사건 이름을 '여검사 성추행'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잦다”며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부각시키는 언론의 사건 작명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 간부 성추행’, 또는 ‘검찰 내 성추행’처럼 가해자나 사건의 배경을 강조하는 제목보다 피해자를 부각시킨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사건의 심각성이 흐려진다는 것.

MBC는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 구조적인 문제점은 제쳐 두고 피해자의 억울하고 불행한 사연으로 의미가 축소된다는 느낌이 있다”고 진단했다.

MBC는 또 “사건의 이름만으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흐려질 수 있다”며 ‘태안 기름유출 사고’보다 ‘삼성-허베이스피릿호 사고’라는 이름을 사용할 때 사람들이 책임 소재를 더 명확하게 인식했다는 한 연구결과를 예로 들었다. 이런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여검사 성추행’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할 경우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서 검사는 “제가 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바꿔갈지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호소했다. 바로 양성평등이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