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규제개혁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문재인 정부가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번 발표에서 정부는 그동안 규제에 묶여 성장이 더뎠던 신산업분야에 ‘선허용, 후규제’ 방침을 적용, 민간 주도의 혁신적인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규제 개혁 용어인 ‘대못 뽑기’와 일견 유사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도 출범 초기에는 규제 개혁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대못을 뽑기는커녕 작은 못조차 뽑지 못했으며 무늬만 그럴듯하게 포장한 ‘창조경제’를 부르짖다가 소멸되고 말았다.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코리아>는 문재인 정부의 규제혁신과 박근혜 정부의 규제 개혁 차이점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해봤다.

정부가 발표한 규제혁신 방안의 핵심은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다. 기존에는 원칙에 따라 허용하고 예외사안은 금지한다는 규제 방식 때문에 혁신 산업의 성장이 방해를 받아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혁신적 시도에 대해 우선 허용하고, 사후 문제발생 시 대처한다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이 도입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앞으로 제품·산업 등의 개념정의 및 분류체계를 좀 더 유연하게 정리하고, 사전심의보다 사후평가방식으로 전환시켜 신기술·신제품의 시장 출시를 촉진할 방침이다. 또한 신산업 분야에 대한 기존 규제를 일정 기간 면제하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를 통해 신산업 분야의 스타트업을 대거 배출시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목표다.

◇ 박근혜도 강조한 ‘네거티브 규제’

신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춰 문재인 정부가 밝힌 이번 규제혁신방안은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재한 4·5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논의된 내용과 맥락이 같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규제를 “암덩어리”, “손톱 및 가시”라고 표현하며 강력한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예고했으며, 임기 중 5차례나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열 정도로 규제 완화에 관심을 보였다.

정부의 규제완화 방향을 결정했던 장관회의가 신산업 분야에 눈길을 돌린 것은 2015년 11월 열린 4차 회의부터다. 1~3차 회의에서는 주로 벤처·창업지원, 입지·건축규제 완화, 외국인 투자 확대 등의 문제가 논의됐으나, 4차 회의에서는 일부 지역에 서드론·무인자동차의 시범운행이 허용되는 등 처음으로 신산업을 위한 규제개혁방안이 논의됐다.

5차 회의 자료에서는 문 정부의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와 사실상 같은 개념인 ‘원칙개선 네거티브 방식’이라는 용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자료에 박근혜 정부는 드론, 자율주행차, 빅데이트, 클라우드, 바이오헬스케어 등, 생명·안전 분야를 제외한 신산업에 대해 선허용, 후규제 원칙을 적용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3월 열린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실패로 끝난 대기업 중심의 ‘창조경제’

신산업 육성을 위해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한다는 점에서 박근혜 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기본적인 규제완화 방향은 동일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규제완화 드라이브는 완벽한 실패로 귀결됐다. ‘네거티브 규제’라는 기본 방향의 문제는 아니었다.

4차 회의부터 논의된 규제완화방안은 박 전 대통령이 강조한 ‘창조경제’와도 연관돼있다. 박 전 대통령은 신산업분야의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립하고 지역별로 특화 산업과 관련된 규제프리존을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혁신센터의 경우, 당초 지역기업과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운영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대기업 전담 지원을 지시한 이후, 대기업이 개별 센터를 맡아 전담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혁신센터는 대기업 주력산업에 스타트업, 중소기업들이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결국 당초 취지와는 달리 대기업 중심 구조로 바뀌었다.

지역전략산업을 선정해 프리존 내에서는 해당 산업분야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규제프리존’도 대기업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지역전략산업을 선정할 때 해당 지역에서 혁신센터를 전담하는 대기업의 주력 사업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이 혁신센터를 맡은 광주 지역의 지역전략산업은 친환경자동차 및 에너지 신산업으로 현대차 주력 분야와 일치한다. 이 때문에 규제프리존은 규제개혁이 아닌 정경유착의 상징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문재인 규제혁신은 기업 자율성 강화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규제혁신방안은 신산업 분야에서 기업들의 자율성을 확보해 다양한 혁신적 시도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선허용, 후규제를 뜻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는 기업들이 마음껏 도전하도록 우선 놔두고, 향후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개선하겠다는 방침이기 때문.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워온 보수 언론에서도 이번 규제혁신방안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최초의 친기업적 행보라며 환영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똑같은 정책방향을 추구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전 정부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신산업 발전의 핵심은 혁신 스타트업의 성장이다. 성패는 생태계 조성에 달려 있다. 전문가들은 “기술은 있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활발하게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우선적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규제완화 역시 대기업 중심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노력의 성과를 강탈당해온 중소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방향이어야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전 정부는 ‘네거티브 규제’라는 방향은 잘 잡았지만 운전대를 다시 대기업의 손에 넘겨줌으로서 혁신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번 정부의 규제완화방안도 시행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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