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는 가상화폐에 대해 화폐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헀다. <사진=JTBC 방송화면 캡처>

[이코리아최근 정제승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교수가 유시민 작가의 가상화폐 비난에 대해 반박하면서,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유 작가는 지난해 12월 JTBC ‘썰전’에 출연해 “비트코인은 사회적·생산적 기능이 전혀 없는 화폐다. 경제학 전공자로서 손대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지난 1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도 가상화폐를 ‘튤립버블’이나 ‘바다이야기’에 비유하며 정부가 투기열풍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 교수는 “유시민 선생님이 (발언의 수위가 센 데 비해) 블록체인이 어떻게 전 세계 경제시스템에 적용되고 스스로 진화할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며 가상화폐 규제가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블록체인은 그저 암호화폐의 플랫폼 만이 아니라, 향후 기업-기업, 기업-소비자 간 거래에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 전세계 경제 및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며 가상화폐를 사회악으로 간주하는 방식의 규제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 블록체인 기술이란

정 교수의 주장처럼 블록체인 기술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유망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간단히 말해 중앙기관 없이 당사자 간 직접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A가 은행을 통해 B에게 1만원을 송금하는 경우 송금과정을 비롯해 거래내역이 기록된 장부는 오직 은행에서 관리한다. 따라서 은행에 송금수수료를 지불하거나, 영업시간에 따라 거래가 지연되는 등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은행에 보안문제 등이 발생했을 경우 거래 자체가 무효화되거나 송금액이 손실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반면 블록체인의 경우 거래내역이 기록된 장부를 시장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분산원장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거래정보를 은행이 독점해 보안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시장참여자가 거래정보를 생성·공유한다는 것. 모든 참여자가 거래장부의 사본을 가지고 있는 셈이기 때문에 거래정보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이론상 모든 참여자의 장부를 위조해야 한다. 당사자 간 직접거래에서 문제가 되는 보안성의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은행과 같은 기관이 필요 없는 탈중앙화된 거래가 가능하다. 해외송금의 경우에도 각국 은행과 환전소 등 기관을 거치지 않고서도 보안성의 문제없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

◇ 비트코인이 화폐로 쓰이기 어려운 이유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의 유용함이 곧, 가상화폐가 실제 통화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 작가는 비트코인의 시세 변동성이 너무 심하다며, 가치 안정성을 요하는 화폐로서는 부적격이라고 지적했다. 하루에도 수십 배를 넘나드는 등락폭을 보이는 가상화폐를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구매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가상화폐가 금처럼 어느 정도 안정된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거래에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변동성 외에도 문제는 더 있다. 바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래비용이 엄청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자체의 태생적 한계다.

블록체인은 거래장부 사본을 다수 발행해 모두가 나눠가짐으로서 보안성을 강화하겠다는 아이디어다. 따라서 가상화폐 생태계에 다수가 참여할수록 보안성 자체는 강화된다. 하지만 다수의 거래자가 참여한다는 것은 기록되는 거래정보와 발행해야할 장부 사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300조 이상의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는 비트코인의 경우, 모든 거래자의 장부에 거래 정보를 동기화시키고 대조하는데 드는 비용은 이미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한 가상화폐는 거래 참여자가 복잡한 연산을 통해 특정 목표값을 찾는 과정(채굴)을 통해 발행된다. 누군가 목표값을 최초로 발견할 경우 신규 블록(장부)이 생성되고, 기존 거래내역을 담은 새 블록은 모든 참여자의 장부에 추가되어 블록체인을 이룬다. 비트코인의 경우 모든 참여자가 채굴 작업에 참여했을 때, 신규 블록 생성에 약 10분이 걸리도록 난이도를 조정하고 있다. 따라서 참여자가 늘어날수록 채굴 난이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채굴은 단순히 가상화폐라는 보상을 받는다는 의미 외에도 거래 내역을 승인하고 기록하는데 자신의 자원을 들여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전기료가 싼 지역을 찾아 대규모 공장식 채굴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거래 승인에 이 같은 막대한 네트워크 비용, 전기료가 소모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유 작가의 가상화폐 비난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사진=정재승 교수 페이스북 캡처>

◇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

이처럼 유 작가가 지적한 대로, 가상화폐가 실제로 현금이나 신용카드처럼 거래에 활용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채굴이나 분산장부 동기화에 들어가는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지만 이는 아직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유용성은 비단 가상화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투기적 목적의 참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거래 효율 문제가 제기된 가상화폐와는 달리, 특정 조직이나 기관 내에서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블록체인 기술의 경우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P2P 기반 분산처리 방식으로 인한 분산성, 누구나 참여 가능한 확장성, 모든 내용에 접근 가능한 투명성 등의 특성을 지닌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 산업 등의 분야에서 고르게 적용되고 있는 추세다.

금융분야에서는 스마트 계약을 통한 효율적 증권거래, 투자자와 스타트업의 직접 연결, 무역 거래 시 관련 문서의 보안성 강화 등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한 가상화폐 관련 대출·송금회사들이 다수 설립됐으며, 미국 나스닥의 경우 변호사에게 의뢰해온 거래 승인 절차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자동검증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산업분야에서도 블록체인의 적용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IBM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물인터넷 기기 간의 소통이 가능한 P2P네트워크를 개발해 시연한 바 있다. 삼성SDS 또한 자사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를 개발해 삼성카드에 적용하기도 했다.

정 교수가 지적한 대로 블록체인 기술은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다양한 활용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잠재력을 굳이 ‘가상화폐’라는 하나의 분야로 국한시킬 이유는 없다. 유 작가의 비판은 블록체인 기술 그 자체에 대한 폄하라기보다는 기술의 잠재력이 투기라는 목적에 얽매여 있는 현 상황을 비난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규제 목표는 가상화폐에 대한 과도한 투기적 거래 진정”이라며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는 기술개발 등으로 장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발전과 투기열풍을 분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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