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중미, 아프리카 국가를 '거지소굴'이라 부르며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사진=비즈니스인사이더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미·아프리카 국가들을 ‘거지소굴’(shithole)이라고 지칭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발언을 부인했으나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 이력을 조명하며 비판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여야 상·하원의원 6명과 이민문제를 논의하던 자리에서 아이티 및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해 “우리가 왜 거지소굴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모두 받아줘야 하느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난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가 사용한 단어가 아니다”라며 발언 자체를 부인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에도 기자들과 만나 “난 여러분이 인터뷰한 사람 중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다”라며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난에 대해 반박했다. 반면 11일 회의에 참석했던 딕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은 “언론 보도에 나오는 대통령 발언을 봤는데, 부정확한 기사를 읽은 적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거지소굴’ 발언을 재확인했다.

이처럼 ‘거지소굴’ 발언을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진 가운데 일부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전부터 보여 온 인종차별적 행보를 집중 조명하고 나섰다. CNN은 16일 “‘거지소굴’ 발언에 집중하는 것은 핵심을 잘못짚은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이 초당적 회담에서 흑인이 다수인 국가를 비웃고 백인이 다수인 국가를 칭찬했다는 사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CNN은 ‘거지소굴’이라는 특정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주의적 태도로 이민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흑인보다 백인 이민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러 번 인종주의와 관련해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지난해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었던 미식축구리그(NFL) 선수들을 비난하며, 구단주들에게 비애국적인 선수들을 해고하라고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8월에는 샬럿빌에서 백인 우월주의 청년이 자동차를 몰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로 돌격해 사상자가 발생하자 오히려 시위대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여러 진영”(many sides)에서 행하고 있는 폭력에 반대한다며 시위대와 가해자 양측 모두 잘못이 있다고 발언했다.

인종주의 논쟁으로 여론의 지지를 잃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태는 계속 반복됐다. 지난해 11월에는 미국 원주민 참전용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체로키 부족을 선조로 둔 엘리자베스 워렌 민주당 상원의원을 “포카혼타스”라고 부르며 농담을 던져 물의를 빚었으며, 올해는 ‘거지소굴’ 발언으로 다시 곤욕을 치르고 있다.

NBC, 뉴욕타임스, 복스(VOX) 등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그가 정치와 관련이 없던 젊은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부동산 업자 시절인 1973년 임대를 문의하는 흑인에게 물량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등 의도적으로 흑인 세입자를 거부한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차별을 인정하는 대신 향후 유색인종 세입자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1989년 흑인 청소년 4명과 히스패닉 청소년 1명이 조깅하던 여성을 강간했던 센트럴파크 사건이 일어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역 신문에 “사형제를 돌려 달라, 우리 경찰도 돌려 달라”며 자비로 전면 광고를 싣기도 했다. 문제는 용의자 5명이 강간 및 살인미수 혐의로 복역한지 13년 후 진범이 밝혀진 것.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여전히 그들이 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사과를 거부했다.

그가 운영하는 트럼프 호텔도 인종주의 문제에 휘말렸다. 1992년 트럼프 호텔은 도박꾼들의 편견 때문에 카지노에서 흑인과 여성 딜러들을 배제했다는 혐의로 20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했다. 트럼프 플라자 호텔의 사장이었던 존 오도넬은 훗날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흑인 회계사들을 비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흑인들이 내 돈을 세는 것이 싫다. 그들은 게으르다. 물론 게으른 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흑인들의 특성이긴 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도 각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1년, 하와이 출신인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컬럼비아대학 및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할 정도의 성적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조사관을 하와이로 보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증명서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은 주로 흑인과 히스패닉을 향했지만,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NBC 방송 12일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파키스탄에 억류된 미국인 가족의 석방 문제에 관해 브리핑하던 정보분석가에게 여러 차례 출신을 캐물었다고 한다. 정보분석가는 처음에 뉴욕이라고 간단하게 답했으나, 정확한 출신지를 묻자 다시 맨하탄이라고 구체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어디 사람이냐”(your people)고 재차 질문했고, 정보분석가는 자신의 부모가 한국인임을 밝혀야 했다. 브리핑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분석가를 “예쁜 한국 아가씨”(pretty Korean lady)라고 부르며, 왜 한국 출신이 북한 관련 업무를 담당하지 않느냐고 보좌관에게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이나 전공과 상관 없이 인종에 따라 업무나 진로도 결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워싱턴에 위치한 트럼프 호텔에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자들이 '거지소굴'(shithole)이라는 단어를 비추며 조롱하는 모습. <사진=로빈 벨 트위터 캡처>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편견은 오래전부터 몸에 밴 것으로, 정치적 계산이나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문제는 그의 인종주의적 태도가 이민정책, 멕시코 장벽 설치 등 굵직한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미국 내 지식인들은 트럼프의 이런 성향이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고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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