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스라엘의 인구는 겨우 850만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나라도 없이 2000년이나 망명생활을 했다. 이스라엘은 세계인구의 0.1%를 조금 넘는 인구를 가졌지만 지금까지 12명 이상의 이스라엘인들이 노벨상을 받았고, 190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선도적인 IT기업인 구글 설립자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 테슬라를 창업한 엘론 머스크, 오라클을 창업한 래리 엘리슨, 트위터의 공동창업자 비즈 스톤, 링크드인을 창업한 리드 호프먼은 모두 유대인들이다. 이스라엘에는 현재 인구 110명당 1개의 스타트업들이 있다.

벤처기업의 성공이라고 불리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해외기업 중 이스라엘기업은 92개가 넘어 중국 다음으로 많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현대자동차도 이스라엘의 혁신능력을 높이 사서 글로벌 혁신센터를 현지에 두고 있으며, 300개가 넘는 다국적 기업이 이스라엘에 R&D 센터를 두고 있다. 흔히 이스라엘 혁신의 원동력은 요즈마펀드로 알려져 있으나, 진정한 혁신의 원동력은 그들의 정신력에 있다. 이글에서는 이스라엘의 혁신의 비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텔아비브.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이스라엘에 부족했던 땅과 사람, 돈과 시간

이스라엘 민족은 땅을 잃고 2000년이나 세계를 배회하였다. 단순히 이방인으로 산 것이 아니고 중세유럽의 국가들은 그들에게 토지소유와 상업조합 가입을 금지시켰다. 유대인들은 돈이 남는 사람들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중계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적었지만, 금융업을 성장시켜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미국 등에서 금융업을 영위하는 성공한 유대인들과 달리 다수의 이민자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하였을 때 빈손이나 다름이 없었고 생존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제2차 대전 후 차지한 땅은 정상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은 하가나라는 민병대가 단 하루 만에 임의로 결정하여 배분한 땅이었다. 물은 부족하고 땅은 소금기가 가득한 땅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물을 아끼고, 하수를 정화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땅에 있는 염분을 제거하면서 혁신을 시작하였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도 “적은 땅과 적은 물로 이스라엘은 농업 선진국이 되었다”고 말했다. 농업은 이스라엘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는데, 농업이 가져온 개척자정신이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건국 초기 인구가 부족했다. 전세계 유대인중 겨우 200만명만 정도 탈출하여 이스라엘을 건국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경제를 부흥시킬 사람이 없자 그들은 적극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며 이스라엘로 귀환시켰다. 유대인들은 사막과 적성국을 횡단하며 수없이 사망하거나 억류되었고 일부만 이스라엘에 도착하였다. 이주민들은 수많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히브리어를 새로이 배워야 했다. 필자가 처음 접한 유대인의 경전 토라도 히브리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적인 다양성은 AT커니가 발표한 글로벌도시지수에서 1위를 차지한 뉴욕처럼 오히려 이스라엘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전세계로 연결된 유대인 네트웍은 이스라엘의 글로벌 마케팅 능력을 강화시켜주었다.

이스라엘은 1948년 영국으로부터 겨우 독립한다. 하지만 그들은 독립 후 주변 중동국가들로부터 공격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침공 위험이라는 절박함이 군사기술과 통신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800만 인구에도 오늘날 이스라엘의 방위산업은 10조원 규모로 세계 10위권에 든다.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이란 다층 미사일방어시스템도 자체적으로 개발하였고 이미 1,200발이 넘는 미사일과 로켓포를 자체적으로 요격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방위산업에는 6만명 이상이 종사하며, 생산품의 80%는 수출된다. 한국정부도 일부 무인기와 탐지레이더를 이스라엘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독립한 이스라엘은 튼튼한 경제와 국방을 유지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을 시작하기 전 주변 국가의 침공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시간이 급박한 이스라엘은 6일간 선제공격한 후 안식일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일념으로 예방전쟁을 감행하였다. 이스라엘은 과감한 선제공격으로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요단강서안과 골란고원을 점령하였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갑자기 3배로 늘렸다. 선제공격으로 3시간 만에 이집트 공군력의 80%를 격파했다. 물론 복수의 기회를 엿보던 이집트도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에서는 사전준비를 통해 이스라엘에 선제공격을 가했다. 그 결과 시나이 반도에 있는 이스라엘 전차의 60% 정도는 개전 후 곧바로 파괴되었다. 하지만 급박한 패전의 위기에서 이스라엘은 하급 지휘관들에게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하며 군사력을 회복할 시간적인 부족을 만회하였고, 성공적으로 전쟁을 종결했다. 오늘날 수많은 대기업들도 신규 사업을 사내벤처로 분사시키며 과감한 권한 위임을 통해 사업진행의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빈손으로 귀국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신생 이스라엘에는 충분한 예산도 없었다. 이스라엘은 예산이 없었기 때문에 발전을 위하여 미국 등 외국의 예산을 끌어와야 했다. 한 때 이스라엘의 유명한 요즈마펀드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 요즈마펀드는 전액이 아니라, 예를들면, 외국의 자본을 60% 정도 끌어오면 나머지 40%를 지원해주는 방식이었다. 요즈마펀드는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공할 경우 40%의 지분도 민간기업에 과감하게 이전해주며 기업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였다. 이스라엘의 기업들은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설립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재 이스라엘의 벤처자금 중 약75%는 외국에서 곧바로 유입된다고 한다. 그리고, 전세계 벤처자금의 약 35%는 이스라엘로 향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기술력은 인정받고 있다. 외국의 벤처캐피털은 단순히 자금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고, 기업들이 성공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더욱 긍정적인 점은 정부가 지원하는 스타트업 자금보다 6배 이상 많은 자금이 민간영역에서 충분히 공급되고 있고 이 점은 이스라엘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한다.

 

이스라엘의 요즈마펀드와 후츠파정신

이스라엘 벤처기업들의 성공원인으로는 흔히 요즈마펀드가 꼽힌다. 요즈마펀드가 진행한 10개 펀드 중 6개 펀드에서 100% 이상의 수익률을 거두었다. 1993년 3,000억 규모의 펀드는 10년후 4조원 이상의 펀드로 성장했다. 자금이 부족하고 내수시장이 적다는 이유로 해외벤처캐피털 유치를 독려한 것이 오히려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스라엘 정부가 운영하는 창업촉진 정책이 30개가 넘지만 정책보다 중요한 것은 비전을 달성하는 정신이었다. 이스라엘에 땅과 사람과 시간과 예산이 없었지만 그들은 다른 민족이 가지지 않은 후츠파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후츠파 정신은 기존의 현상을 재해석하며, 반대해석을 하면서 분석하는 것이다. 돌직구를 던지는 질문과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도 포함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도인처럼 방대한 양의 암기를 통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의 끊임없는 토론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배웠고 사물을 깊이 보는 능력을 가졌다. 필자는 통신기기들을 수입하고 IT기술을 수출하면서 다수의 이스라엘 기업들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만났던 일부 기업들은 초면에 무례할 정도로 매출액, 종업원수, 부채규모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기존의 권위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후츠파 정신이 기술개발과 원료공급, 제품판매에서 오히려 혁신을 야기하는 동력으로 작동했다.

이스라엘의 경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폴과 같이 군대에 의무적으로 복무한다. 그런데 이스라엘군의 엘리트집단은 이 기간에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공학을 열심히 배운다. 군복무 기간이 기술을 연마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었고, 군에서 배운 기술은 민간에서 적절히 활용되었다. 테러리스트 추적기술은 블랙컨슈머 추적기술로, 네트웍 접근차단 기술은 방화벽으로 활용되었다. 군제대 후에는 이스라엘인들은 예비군에 편입되었다. 오래기간 지속된 군복무와 예비군복무는 국민들을 차별 없이 하나로 묶는 동시에 굳건한 상업적인 네트웍을 형성하였다.

이스라엘의 혁신의 원동력은 상호경쟁에도 있다. 고3학생들은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군복무에 있어서도 8200부대 등 엘리트부대에 들어가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 부대는 '스턱스넷'이라는 악성코드를 이란의 우라늄 농축시설에 침투시켜 1년간 설비를 마비시킨 것으로 의심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전쟁에 승리하였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하여 부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경제적으로 위기가 예견되자 2003년 4,000명의 공무원을 감원하고 국영기업을 과감하게 민영화하며 국가경쟁력을 개선했다. 오늘날 성공적인 혁신국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도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하르츠개혁으로 복지축소, 노동시장유연화, 창업활성화를 이룬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패자부활정책

텔아비브의 로스차이드 애비뉴와 브엘세바와 같은 도시는 이스라엘판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구로디지털단지, 판교테크노밸리, 대덕연구단지 등 실리콘밸리 역할을 하는 지역은 많지만 성공적인 기술이 있어도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확률은 10% 정도라는 주장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창업 후 상업적 성공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정부는 창업투자 손실을 최대 80%까지 보전하는 정책을 펼쳤다. 청년들의 창업의지를 정부가 북돋아주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가진 것이 없어서 더욱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고, 혁신의 장벽을 빠르게 돌파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부터 주변에 대한 체면을 생각하고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결코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없다. 혁신과 상업적 성공이 쉽지는 않지만, 정부와 사회가 지원과 관심을 강화한다면 ‘너는 왜 취업하니, 친구들은 창업하는데'라고 묻는 이스라엘처럼 한국도 혁신적 국가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스라엘이 후츠파정신으로 성공한 것처럼 한국의 청년들도 단순히 강의를 듣고 암기하는 것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고로 토론을 전개할 필요도 있다. 한국 시장에는 이미 다양한 규제가 존재한다. 기업과 청년들이 규제나 환경만을 탓하지 말고, 이스라엘을 참고하여 글로벌 생태계를 향하여 과감하게 나아갈 필요도 있다.

 

여정현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 안양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주)명정보기술 산호세법인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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