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한 투자자가 오프라인 거래소에서 전체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가상화폐 시황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새해 들어 정부 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승세를 보여 온 가상화폐들이 일제히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몇몇 가상화폐는 무려 전일 대비 30% 가까이 시세가 폭락해 장기투자를 외치던 투자자들을 울상 짓게 하고 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 기준 국내 가상화폐 시세는 전일 대비 15%~30%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1일 오후 3시20분 현재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17.8% 하락한 1840만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리플 22.4%(2501원), 이더리움 26.5%(165만100원), 비트코인캐시 15.8%(340만500원) 등 알트코인들도 일제히 가격이 폭락했다. 퀀텀의 경우 어제보다 29.6% 하락한 6만980원으로 가장 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 시세 하락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주요 알트코인의 경우 며칠 전부터 가격이 완만하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 잇따른 정부 규제 발표가 효과를 발휘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더리움의 경우 규제 발표와 상관없이 230만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고 비트코인도 한때 2500만원을 까지 폭등해, 단순히 가상화폐 간에 자금 이동이 있었던 것뿐이라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 경찰의 코인원 수사 소식과 국세청의 빗썸 등 일부 거래소 세무조사 소식이 연이어 알려지면서, 가상화폐 시장 전체에 한파가 불어오고 있다. 특히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며 거래소 폐쇄까지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혀 투자자들을 긴장시켰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거품이 곧 꺼질 거라던 비관적 전망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은 이미 수많은 업계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돼왔다. 전문가들은 가상화폐가 실물경제와 연관성이 없고, 통화로서의 기능도 부족하다며 언젠가 거품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비트코인닷컴 CEO 로저 버는 지난 12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가격은 더 상승하겠지만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됐다”며 “비트코인의 미래가 우려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2011년 약 2만5000달러로 비트코인을 구입한 뒤, 가치가 4억 달러 이상으로 치솟아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로저 버는 “비트코인 개발자들이 돈으로서의 기능을 파괴했다”며 “더 이상 가용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 또한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몇 달 동안 가상화폐 시장이 급격하게 상승했는데, 이는 투기적 거품”이라고 강조했다. UBS는 해당 보고서에서 “가상화폐는 통화로 받아들여질 때 가치를 지닌다”며 “현 경제에서 중요 거래 매개체로 사용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도 지난 10일 “가상화폐는 나쁜 결말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며 “비트코인 선물에 관해 잘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버크셔헤서웨이가 이를 사들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업계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하면서, 가상화폐 거래를 제도화한 국가에서도 점차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이 클레이튼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가상화폐 거래에 대해 “투자자 보호 수단은 거의 없고 규제 주체가 없어 사기나 조작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 돼있다”며 신규가상화폐공개(ICO)에 대해서 엄격하게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당시 1500만 달러 규모의 ICO를 준비하고 있던 신규 가상화폐 '문'(MUN)을 정보공개 미흡 등을 이유로 중단시켰다. 이미 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시킨 중국에서는 아예 가상화폐 채굴까지 금지할 계획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3일 비공개회의를 열고 각 지방정부에 채굴업자에 대한 전력공급 제한 등을 통해 채굴 규모를 축소하라는 지시를 전달했다.

우리 금융당국은 이미 가상화폐 거래를 투기로 규정하고 실명제 도입과 처벌수위 강화 등 강력한 대응방침을 발표해왔다. 법무부가 발표한 거래소 폐쇄 방침도 지난 12월28일 관계 부처회의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부회의에서 “가상화폐 거래는 공무원 품위 유지와 복무수칙에 비춰 안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가상화폐 규제에 앞서 집안 단속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연이은 각국의 규제 움직임의 영향으로 가상화폐 거품이 빠지고 있다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번 하락세도 단기적인 현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TF 글로벌마켓의 수석시장분석가 나임 아슬람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단기간 가상화폐 규제가 강화되겠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국 거래소 가격은 비정상적이어서 당국의 규제가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해외 거래소의 시세도 하락하고 있지만 국내 거래소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해외 가상화폐 시황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은 전일대비 5.8% 하락했으며, 이더리움은 13.6%, 리플 11.8%, 비트코인캐쉬 0.8%, 퀀텀 12.8% 등 대부분 10% 안팎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최대 30% 가까운 국내 거래소 하락폭의 3분의 1 수준이다. 긍정적으로 보면 현재 국내 거래소의 하락세는 지나친 가상화폐 프리미엄이 조정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 1개월 간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의 변화. 불과 수일만에 30%가까운 시총 변동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코인마켓캡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의 지나친 불안정성은 이러한 낙관론에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지난 7일 최고 8355억 달러까지 치솟았다가 불과 4일 뒤인 오늘 6317억 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나흘 만에 전체 시가 총액이 무려 24.4%나 줄어든 것. 지난해 12월21일에는 6394억 달러였던 전체 시가총액이 하루만에 4224억 달러로 34%나 급감하기도 했다. 이처럼 엄청난 변동성을 보이는 시장을 안전하고 정상적인 투자처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하락세가 전문가들의 어두운 전망이 실현되고 있다는 조짐일지, 아니면 항상 있어왔던 단기적 흐름에 불과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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