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가상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이 지난 8일 한국 거래소의 시세를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가상화폐 시세가 잠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사진=코인마켓캡 공식 트위터 캡처>

[이코리아] 지난 8일 가상화폐 시세가 이유 없는 폭락세를 탔다가 금세 진정됐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해외 시황중계 사이트에서 한국 시세를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신년 들어 상승세를 유지하던 국내 가상화폐 시세는 지난 8일 오후 9시경부터 갑작스럽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이날 개당 2500만원을 돌파하며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가상화폐)에 밀렸던 지위를 회복하는 듯 보였으나, 밤 9시 이후 급락하기 시작해 자정에는 약 2256만원까지 떨어졌다.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인 리플도 이날 개당 4300원을 오가며 횡보하는 양상을 보였으나 같은 시기 하락세를 타 자정에는 3500원을 기록했다. 이날 개당 200만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였던 이더리움도 순간적으로 약 160만원까지 시세가 하락했다.

특이한 사실은 이러한 폭락세가 불과 2~3시간 만에 회복됐다는 것.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가상화폐 시세는 폭락 직후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9일 오전 3시경에는 대부분의 가상화폐가 전일 거래가를 회복했다.

투자자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예고 없는 시세 폭락은 해외가 진원지로 밝혀졌다. 대표적인 해외 가상화폐 시황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Coinmarketcap.com)에서 한국 주요 거래소의 가격을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 코인마켓캡은 지난 8일(현지시간) 오전 공식트위터를 통해 “오늘 아침 우리는 지나친 시세 차이와 제한적인 재정거래 기회로 인해 몇몇 한국거래소의 가격을 배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계 타 거래소에 비해 높은 한국거래소 시세를 반영하지 않게 되자 코인마켓캡이 중계하고 있는 각종 가상화폐의 시세와 시가총액이 일순간에 하락하게 된 것.

한국거래소 가격은 세계의 다른 거래소 시세보다 지나치게 높아,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김프’(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용어로 회자되고 있다. 해외·국내 시세차이를 뜻하는 ‘김프’는 그간 약 10%~20% 수준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에 코인마켓캡이 한국 거래소 시세를 배제하기로 하면서 ‘김프’의 구체적인 수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9일 오후 3시 현재 코인마켓캡 기준 비트코인 가격은 약 1만5272달러로 현재 환율로 계산할 때 우리 돈 약 1631만원에 해당한다. 국내 거래소인 빗썸의 같은 시각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약 2320만원. 국내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약 42.2%가량 높으며, 이전에 추정됐던 한국 프리미엄의 약 두 배에 해당한다.

실제로 한 개인투자자가 제작한 해외/국내 가상화폐 시세비교 사이트에 따르면 국내 시세와 해외 시세의 차이는 약 50% 수준이다. 시가총액 상위에 위치한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라이트코인 등의 주요 가상화폐들은 대부분 해외 시세보다 1.5배 높은 가격에 국내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시세가 지나치게 높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높은 국내 투기 수요와 제한적인 해외 거래소와의 재정거래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예를 들어 ‘김프’가 심한 대표적인 가상화폐로 알려진 리플의 지난 하루 동안의 거래량을 비교해보면 상위 10위권에 국내 거래소가 세 개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중 빗썸이 1위로 1일 거래량의 32.01%를 차지하고 있으며 코인원, 코빗 등도 8.14%, 5.18%로 각각 3위와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트코인의 경우 빗썸이 12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가상화폐 천국으로 알려진 일본 최대 거래소 비트플라이어보다 두 계단이나 높은 순위다.

블룸버그는 최근 세계 경제규모의 2%도 미치지 못하는 국가가 비트코인 거래량의 20%를 점유하고 있다며 국내 가상화폐 투자열기를 전한 바 있다. 블룸버그에 보도된 수치는 약간 과장되어있으나, 실제 비트코인 거래량에서 원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에 해당한다. 리플의 경우 13%, 이더리움도 약 9%가 원화로 거래되고 있다. 한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할 때, 가상화폐 거래에서 한국의 비중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엄청난 투기 수요 덕분에 국내 가상화폐 거래량 및 가격이 폭등하자, 오히려 해외시세에 국내시세가 영향을 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특히 최근 계속된 가상화폐 상승움직임에 고무된 투자자들이 지속적인 매수세를 보이면서 10% 수준이었던 ‘김프’는 50%까지 상승하게 됐다.

이처럼 국내 시세에 거품이 꼈을 경우 해외 시장과의 거래를 통해 가격 균형이 회복되는 것이 정상이다. ‘김프’가 50%라면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매한 뒤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소위 ‘환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도 다수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해외거래소와 국내거래소간 재정거래에는 많은 제약이 있어, 시세가 정상적으로 균형점을 회복하는 과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선 해외 거래소에서는 구매를 위한 계좌 발급에 신분확인을 위한 여러 절차를 거치고 있다. 사진이 포함된 신분증의 캡처를 비롯해 거주지를 증명할 수 있는 공과금 내역서등의 사본 등을 제출하고 나서도 수일간의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국내 거주자가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 입금하기 위해 해외은행에 계좌를 여는 것도 까다로운 일이다. 카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추가적인 수수료 부담도 무시하기 어렵다.

해외 거주중인 지인을 통한다고 해도 송금사유 없이 해외에 보낼 수 있는 돈은 겨우 5만 달러 수준이다. 가상화폐 환차익을 노리는 투자자에게는 지나치게 규모가 작은 액수다. 설령 많은 투자자가 5만 달러 수준의 재정거래를 하더라도 국내 시세를 정상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해외 거래소에서 구입한 가상화폐를 국내 거래소로 옮기는 것도 문제다. 가상화폐의 특성상 거래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재정거래를 시도해 본 투자자들은 전송에 수 시간에서 수십 시간이 걸린다며 해외 거래소 이용을 만류하고 있다. 여기에 해외·국내 거래소에서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와 짧은 시간에도 엄청난 변동폭을 보이는 가상화폐의 특성 상 재정거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결국 투기 수요는 높고 해외 거래소와의 재정거래는 어렵다는 이중의 상황이 현재 50%에 달하는 ‘김프’를 만들어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몇몇 투자자들은 재정거래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15% 정도의 거품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의 국내시세는 지나치게 높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 상승에 대한 투자자들의 믿음이 확고한 상황에서 실체를 드러낸 ‘김프’가 국내 투기수요를 억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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