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유무역협정 제 1차 개정협상 중인 한미 양측 대표단.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코리아] 한국과 미국이 지난 5일(현지시간)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1차 협상을 마쳤다. 예상대로 미국 측이 자동차분야의 무역수지 개선을 요구한 가운데, 우리 측도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개정 등을 요구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미국은 전면개정을 논의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협상과는 달리, 한미FTA에 대해서는 부분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에 대해 상세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전면개정을 위해서는 의회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부담과 부분개정으로도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미국 측의 요구로 시작된 이번 개정협상에서 핵심 이슈는 ‘자동차’였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협상을 마친 뒤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등 주요 산업품목에서 더 공정한 상호 무역을 하고, 여러 또는 특정 분야 수출에 영향을 주는 무역장벽 해소를 위한 제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우리 측 협상단 수석대표인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정책국장도 협상 후 기자들과 만나 “자동차분야가 미국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이슈”라고 밝혔다.

양 측 대표단은 상세한 요구내용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이미 한국시장에서 미국 자동차 및 부품에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만큼 비관세장벽 철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무역수지 불균형의 요인으로 지목해온 비관세장벽은 안전기준, 연비규제 및 수리이력고지 등이다. 현재 한미FTA 규정에 따르면 한국의 안전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자동차도 미국 내의 안전기준을 충족할 경우 업체 당 2만5000대까지 수입이 가능하다. 미국은 이 쿼터를 확대 내지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더해 리터당 17km로 미국(16.6km)보다 높은 국내 연비규제의 완화 및 수리 이력 고지 의무의 폐지 등도 논의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NAFTA 재협상 내용을 고려할 때 미국산 부품 사용 등의 요구가 제기됐을 가능성도 높다. 미국은 NAFTA 재협상 과정에서 자동차 원산지 규정을 역내부가가치기준 62.5%에서 85%로 강화하고, 미국에 수출하는 자동차에 미국산 부품을 50% 이상 사용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한미 간 자동차 무역이 불공정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비관세장벽의 철폐가 불가피하다는 미국의 주장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2016년 한국차의 미국 수출은 160억1800만 달러인 반면, 미국차의 한국 수출은 17억3900만 달러로 약 9.2배가량 차이가 난다. 이 수치만 고려한다면 미국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2012년 한미 FTA가 발효된 이후 양국 자동차무역의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차의 미국 수출은 2012년 108억3300달러에서 2016년 160억1800만 달러로 약 48% 증가했다. 반면 미국차의 한국 수출은 2012년 7억1700만 달러에서 2016년 17억3900만 달러로 142.5%나 급증했다. 무역수지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지만, FTA 발효 이후 성장세가 두드러진 것은 오히려 미국차 쪽이다.

게다가 FTA발효 이후 2015년까지 꾸준하게 상승했던 한국차의 대미수출은 2016년~2017년 들어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한국차에 대한 관세를 철폐한 2016년 한국차의 대미수출은 106만6164대, 179억 달러를 기록했던 2015년에 비해 96만4432대, 160억 달러로 약 10% 가량 감소했다.

반면 미국차의 경우 FTA를 발효했던 2012년 이후 꾸준하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차의 한국수출은 대수 기준 2012년 1만3669대에서 2016년 6만99대로 다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입자동차 시장에서 미국차의 점유율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2012년 당시 미국차의 수입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대수 기준 11.1%로 유럽(64.0%)과 일본(15.3%)에 크게 못 미쳤으나, 2016년 현재는 9.0% 상승한 20.1%를 기록해 일본(14.6%)을 제치고 확고한 2위에 자리하고 있다.

결국 미국 측의 주장과 달리 한미FTA로 득을 본 것은 양국 모두이며, 무역수지 또한 2016년 이후 개선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 특히 미국차의 대한 수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미국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미국이 주장하는 비관세장벽 철폐 또한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국내 연비규제가 리터당 17km로 미국(16.6km)보다 엄격한 것은 사실이나, 유럽(18.1km)과 일본(16.8km) 역시 미국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수리이력 고지도 미국 36개 주에서 이미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차도 같은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관세장벽 철폐를 합리적인 개정요구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내에서도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상원 재정위원회의 론 위든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트럼프 정부가 한미FTA 개정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또한 최근 2018 전미경제학회(AEA)에 참석해 “미국은 상품수지에서는 적자이지만 서비스수지에서 흑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면서 한미 FTA재협상을 “큰 실수”라고 지적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국 우선주의를 주장해온 트럼프 정부가 FTA 재협상 테이블에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1차 회의에서도 양국 대표단은 9시간에 걸쳐 마라톤협상을 벌이며 앞으로의 논의 과정이 험난할 것을 암시했다. 우리 측 대표단은 미국 측의 압박에 맞서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개정 및 무역구제 등을 카드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향후 서울에서 열릴 2차 협상에서 양국의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을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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