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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예술운동 ③] 김선태 작가“버려지는 것들을 모아 새 생명 창조해요”
  • 임해원 기자
  • 승인 2017.12.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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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작가.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이코리아]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김선태 작가는 본인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회적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아스퍼거 증후군은 다른 발달장애와 달리 언어나 인지능력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실제로 김선태 작가는 일반학교를 다니고 입시미술을 공부해 현재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오래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장애라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고 자신도 이동이나 생활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김 작가는 본인이 ‘한국 사회’에서 장애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국가에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고 복지카드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사회적 기준에 따라 장애인으로 분류되면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장애’라는 사회적 범주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에이블아트센터에서 활동 중인 발달장애 예술가 중 김 작가가 유일할 것이다.

스스로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장애인으로 분류된다는 인식의 괴리를 극복하는데 1년의 시간이 걸렸다. 김 작가의 어머니 최지연씨는 “선태는 자신이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등급 신청도 선태 모르게 진행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려줬는데 납득하는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최씨는 장애는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된 것뿐이라고 반복해서 김 작가를 설득해야 했다.

자기인식과 사회적 인식의 괴리를 끌어안은 것처럼 김 작가는 서로 다른 두 세계에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김 작가는 그 어떤 ‘테두리’로도 가둘 수 없는 무한한 창조성을 펼쳐내는 다양한 작품들을 그려내지만, 대학교에서는 시각적으로 안정된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현대 디자인이 요구하는 일정한 ‘테두리’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대학생이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김 작가의 작품활동은 소재나 기법, 주제의 한계를 찾기 어렵다. 특정한 문양이나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리거나, 몰입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작품을 연속해서 쏟아내는 작가도 있는 반면, 김 작가의 화풍은 ‘자유로움’ 그 자체다. 입시미술을 준비하며 잠시 자신의 창조성을 봉인해야 했던 김 작가에게 에이블아트센터에서의 활동은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왼쪽은 김선태 작가의 동양화 작품. 오른쪽은 식물과 풍경을 엮어 인물을 표현한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를 연상케 한다. <사진=에이블아트센터>

그가 처음 에이블아트센터에서 했던 작업은 유명한 서양화가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스타일을 바꿔 그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은 곧 수묵으로 세상을 그려내는 동양화로 옮겨갔고, 곧이어 전통적인 동양화에 일상적인 소재를 추가해 새로운 형태의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김 작가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너무 많이 버리는데, 나는 버리기보다는 없애는데 힘을 쏟고 싶었다. 그래서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서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세상에 버려진 모든 소재들을 사용한다. 쓰다 남은 치약을 짜내면 산이 그려지고, 작아져버린 지우개 조각들이 바위더미가 되기도 한다. 라면을 캔버스에 붙여서 사람 얼굴을 그리고 짜장라면으로 음영을 표현하기도 한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햄버거 포장지도 그의 손에 쥐어지면 “땅을 표현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된다. 김 작가는 “동양화에는 이런 방식이 없었다. 나는 아이디어는 좋은데 자세한 기법을 잘 모른다. 좀 더 연구하고 배우고 싶다”며 “서양화와 동양화를 합쳐 동양판 주세페 아르침볼도를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만들어낸 소위 ‘동양적 아르침볼도’ 중 하나는 얼마 전 서울 삼성동 전시회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쓰레기를 활용한 김선태 작가의 작품. 치약으로 테두리를 그리고 라면으로 피부를 표현했다.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에이블아트센터에서는 그의 자유로운 표현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다보니 점점 작업 규모가 커지기도 했다. 에이블아트센터 이지혜 비주얼아트팀장은 “김선태 작가는 가끔 우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작업을 한다. 식당 쓰레기를 전부 들고 올라와 천장에 붙이기도 하고 미용실에서 자른 머리를 비닐봉지 가득 담아오기도 하는 등 기행이 어마어마하다”며 웃었다. 이 팀장은 여러 작가들이 활동하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김 작가의 창작욕을 다 펼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그가 도저히 어떤 ‘테두리’로도 담을 수 없는 작업을 펼친다면, 학교에서는 현대 디자인의 기준과 방식을 배우는 성실한 대학생이 된다. 입시미술을 시작하고 대학에 들어가 디자인을 전공하는 것은 부모나 다른 이들의 조언이 아닌 김 작가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어머니 최씨는 “대학 보내기 전에 주변에서 찬반이 많이 갈렸다. 대학에서 뭘 배우겠느냐, 선태 그림이 망가질 수도 있다며 말리는 사람도 많았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김 작가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동료와 교수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 대학 졸업장을 꼭 따야 한다는 생각도 확고하다. 때문에 그는 인터뷰 내내 장거리 통학으로 뭉친 허리를 연신 주무르면서도 학교생활에 대해 “힘들지만 즐겁다”고 이야기했다. 김 작가는 학교에서의 배움에 대해 “자유로운 센터에서의 작업과는 달리 오래 생각하고, 오래 수정해야 하는 꼼꼼한 작업”이라며 “교수님들이 작은 부분도 꼼꼼하게 살펴보시기 때문에 인정받으면 기쁘기도 하지만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디자인학과에서 필요로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잘 다룰 줄 몰랐던 김 작가는 입학 초기 다른 동료들을 따라잡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자유로운 회화 작업을 주로 해왔던 그가 형태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고려해야 하는 디자인 작업에 익숙해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김 작가는 “힘든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대학 공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되는 것이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안정된 기준에 맞춰야 하는 디자인 작업이지만 김 작가의 창조성이 완전히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안정된 형태의 디자인작품들을 완성해가면서, 점차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서사를 자신의 디자인에 입히는데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캐릭터가 ‘스팅키’다.

그가 창조해낸 가상의 캐릭터 '스팅키'를 차용한 깃발 도안. <사진=에이블아트센터>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스팅키는 필라델피아의 한 도공에 의해서 만들어진 접시로, 우연하게 생명을 지니게 되어 자신을 만들어준 도공을 아버지로 여기고 살아간다고 한다. 마치 ‘피노키오’를 연상하게 하는 이 이야기는 점차 스팅키의 형제자매와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세계 각지로 떠나면서 펼쳐지는 모험담으로 이어져 디즈니 월드와 같은 방대한 서사를 이룬다. 김 작가는 자신이 창작해낸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깃발이나 도자기같은 새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학교에서의 경험을 새로운 창작으로 연결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팅키가 그려진 종이 컵 홀더를 에이블아트센터 인근 카페에 제공하기도 했다. 카페운영자는 “처음에는 카페 인테리어나 컨셉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고민했었는데, 요즘은 잘 사용하고 있다. 특히 10대~20대 젊은 친구들이 컵홀더가 예쁘다는 칭찬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김선태 작가가 디자인한 종이 컵홀더.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이처럼 두 가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 작가의 미래에 대해 주변인들은 기대도 고민도 많다. 학교 수업의 틀에 맞추다가 고유한 감수성이 왜곡되는 일은 없을까, 졸업과 인정에 대한 강박이 혹여 장애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이 팀장도 “김선태 작가는 어떤 사회적 굴레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 졸업장이 없어도 그의 작품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필드가 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의 인정과 졸업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센터에서 좀 더 자유로운 작업에 집중한다면 전시나 프로모션도 더 자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고민이 꼭 특별하다고 볼 것은 아니다. 김 작가가 겪고 있는 고민들은 사실 그 나이의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이블아트센터의 김미라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는 다른 친구들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순수예술을 한다고 결혼이나 취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나”라며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 딜레마에 부딪히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그것이 김선태 작가에게도 똑같이 있는 것 뿐”이라고 설명한다. 김 작가도 그저 흔한 성장통을 앓고 있는 우리 주변의 여러 청춘들 중 하나라는 것.

김 작가의 어머니 최씨는 김 작가가 대학과 센터 두 곳에서 서로 다른 방식의 작업과 고민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씨는 아들의 미래에 두 가지 길이 모두 놓여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최씨는 “자기 그림을 그리면서 그걸로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자기 작품 활동도 하고 그걸 기반으로 디자인상품도 만들 수 있는 김 작가의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주는 것이 지금의 꿈”이라고 밝혔다.

처음 장애라는 사회적 테두리를 받아들일 때 1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김 작가가 학교와 센터라는 두 가지 길 사이에서 자기만의 답을 내리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로 자연을 그려내고 디자인 속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그라면 어느 장소에서 살아가건 항상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며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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