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뇌물공여 혐의 항소심에 출석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을 모두 처분하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지배력에 균열이 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며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주식 약 404만주를 모두 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두 기업의 주식을 모두 보유하고 있던 삼성SDI는 순환출자구조를 ‘강화’한다는 공정위 경고에 따라 통합 삼성물산 주식 904만주 중 500만주를 처분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법 해석을 변경하면서 나머지 404만주도 마저 처분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해당 주식은 삼성물산 전체 지분의 2.1%에 해당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전체 지분의 17.23%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39%, 자사주가 14%로, 삼성SDI의 지분이 처분된다고 해서 지배구조가 흔들릴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공정위의 삼성SDI에 대한 삼성전자 주식처분 권고는 재벌 지배구조 개혁의 신호탄이다. 김 위원장은 공직을 맡기 전부터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관계라고 주장해왔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의 19.34%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23%를 보유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이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63%와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라는 압력이 계속 가해지고 있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총 4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사주 소각에 따라 전체 주식 수가 감소하면 삼성생명을 비롯한 금융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상승하게 된다. 금산법에 따르면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 지분 10% 이상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합치면 약 9.67%. 내년에도 삼성전자가 예정대로 자사주를 소각한다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소량을 매각해야 할 수 있다.

또 다른 압력은 문재인 정부가 대표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 도입이다. 대기업 계열 금융사의 통합 감독을 취지로 준비 중인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이 도입되면 그룹 계열사 간 내부 출자가 자본적정성 평가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적격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1일 “내년에 (통합감독시스템)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가장 큰 압력은 보험업법 개정 논의다. 현재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그룹 계열사 지분이 총 자산의 3%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계열사 지분을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계산한다는 것.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은 총 1062만2814주, 취득원가인 5만3000원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약 5630억원 수준이다. 이는 2017년 3분기 기준 삼성생명 총 자산 281조4880억원의 0.2%로 사실상 처분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시가로 계산할 경우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은 21일 종가 245만7000원 기준 약 26조1000억원으로 총 자산의 9.27%에 해당한다.

현재 국회에서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험업권의 주식투자 한도를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책정하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대부분을 매각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물론 삼성전자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중 삼성전자 다음의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계열사 지분을 먼저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금융지주사 전환을 고려했던 삼성생명이 금융계열사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할 확률은 매우 낮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증권·삼성카드·삼성화재 등의 금융계열사 지분은 21일 종가 기준 약 6조2800억원 수준이다. 삼성생명 총 자산의 3%는 약 8조4400억원으로, 여유분은 겨우 2조 남짓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중공업이나 에스원 등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지만 규모가 미미해 처분해도 영향이 크지 않다. 결국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한 24조원 규모에 가까운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으며 당장 삼성SDI의 주식 2.1%도 아쉬운 상황이 올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야3당 정책연구소 공동시국토론회 발표에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서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및 3세 승계구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독 보험업법에서만 계열사 주식 보유분을 시가가 아닌 취득가로 평가하도록 하는, 삼성그룹에 대한 특혜를 제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칼끝이 삼성SDI를 넘어 삼성생명으로 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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