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확보 위해 혁신협력플랫폼 신속 구축해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동북아사업단장 홍성범 박사

[이코리아] “기존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전략은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계없이 이미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이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중국 진출을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동북아사업단장 홍성범 박사(59)의 일성이다. 홍 박사는 중국과학기술정책과 한중과학기술협력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홍 박사는 1990년부터 정부 차원의 ▲한·중기술협력 프로그램 기획과 평가 활동, ▲중국의 기술혁신시스템과 기술경쟁력, 중화권 기술혁신네트워크, 체제전환국(구 사회주의권 국가)의 국가혁신시스템 비교, ▲기술지식의 국제이전 메커니즘, 과학기술협력정책, 민군기술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온 중국통이다. 또한 중국이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해가던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칭화대학 고급방문학자,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으로 활동한 한·중관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코리아>는 홍 박사를 만나 향후 한중관계와 바람직한 중국 진출 전략을 들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이다. 사드 문제로 경색됐던 한중 관계가 어떻게 풀릴 것으로 예상하나.

“중국이 사드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은 지난 10월 열렸던 ‘19차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이전까지다. 이 시기는 시진핑 주석이 강력한 지도력을 대내외에 특히 중국 내부에 보여주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10월 당대회에서 ‘시진핑 사상’이 공산당 당장(黨章)에 삽입되고, 후계체제를 두지 않은 채, 이른바 ‘시자쥔’(習家軍)이라 불리는 측근들을 요직에 등용하면서 거의 완벽한 ‘시진핑 체제’를 구축했다. 따라서 중국을 포위하고 있는 한·미·일 동맹체제에서 비교적 약한 고리라고 볼 수 있는 한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중국에게도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사드로 인한 경색국면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사드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진 않을 것이다. 중국은 경색된 부분을 일부 풀면서 적당히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식으로 대한민국과의 중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사드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드 보복을 계기로 무역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많은 기업인들 가운데 이제 중국에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한 견해는.

“25년이란 한중관계를 살펴보면 수교 초기부터 15여 년 동안 이른바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매개로 한 가공무역체제에서 한·중 양국은 상호 윈윈하며 최대한의 이익을 향유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시장 환경이 급변했다는 점이다. 값싼 노동력에만 의존했던 중국이 일취월장한 기술력과 막강한 유통네트워크를 겸비한 공룡으로 변신하고 있는데다 중국 내 중산층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내수시장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 때문에 가공무역 위주의 한·중 간 교역체제는 중국 내 임금의 급상승으로 이미 효력이 다했고, 중국에서 가공한 제품을 제3국으로 수출하는 시스템에 안주했던 우리 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을 깊이 파고들지 못하면서 중국내 한국 기업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드와 상관없이 이미 한국의 대중 전략은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새로운 진출패러다임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다만 사드가 가져온 순기능이라면 그동안 미래대비 없이 중국시장에 안주했던 한국과 한국 기업에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업이 중국 내수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 중국 시장은 최고의 기술력과 영업력으로 무장한 전 세계 다국적기업들이 경쟁을 펼치는, 글래디에이터들의 격전장, 콜로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투의 규칙이 서방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전장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제품이니 중국에서 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최고의 기술력과 중국 마케팅 능력을 보유한 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직 중국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뛰어들어야 한다. 국내 중소벤처·스타트업들이 중국시장에 뛰어들려면 이전보다 훨씬 더 정교한 준비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나 공공부문의 진출 플랫폼 설계도 이전과는 달라져야 한다.

중국 측 관계자와 대화 중인 홍성범 박사(왼쪽, 홍성범 박사 제공)

 

▶한 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했던 삼성전자의 위상 추락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2007년과 2008년 삼성중국본부에서 해마다 여는 ‘중국R&D전략회의’에 연사로 초청된 바 있다. 삼성 본사와 중국 내 최고기술경영자(CTO)들이 모인 이 회의에서 제가 강조한 것은 신속한 ‘중국향’(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핸드폰의 개발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 내 점유율 30%에 육박해 1위를 기록하고 있던 삼성은 “전 세계가 삼성핸드폰을 사용하는데 굳이 중국향은 필요 없다”란 반응이었다. 이런 중간관리자들의 안일한 생각이 결국 중국 시장에서의 추락하는 결과를 낳았고 거대한 태풍으로 돌아오는 ‘나비 효과’를 일으켰다.

최근 삼성휴대폰 중국 시장 점유율은 2.2%에 불과하다. 1인당 GDP 8600달러의 중국 소비자들은 이젠 더욱 예쁘고 다양한 제품을 찾고 있다. 중국 소비 트렌드를 따라 잡는 ‘중국향’ 제품을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플랫폼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어떤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건가.

“정부 및 공공기관이 혁신협력플랫폼을 중국에 신속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혁신가치사슬(innovation value chain)은 연구개발-성과창출-기술사업화-창업-생산-마케팅-IPO-M&A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전 과정에서의 협력이 혁신협력이다. 예를 들어 현재 과학기술연구원은 상해과학원·상해산업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한-상해글로벌혁신센터’를 운영 중이다. 상해과학원은 상해시 정부가 운영하는 분야별 41개 연구기관을 가진 헤드쿼터이고 상해과학원 산하기관인 상해산업기술연구원은 연구성과 실용화 및 기술사업화 전담기관이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의 제품을 상해산업기술연구원과 공동으로 중국향 제품으로 개발하고, 이를 위한 조인트벤처를 설립, 기술과 R&D는 한국이 맡고 생산과 마케팅은 중국이 전담한다. 이를 통해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나아가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한다면 중국증시에 상장될 수 있다. 수많은 중앙정부 및 지자체차원의 지원프로그램은 기존의 산업간·기술간 협력에서 ‘혁신협력’의 개념으로 새롭게 세팅돼야 한다.

▶중국 시장이 향후에도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서방 예측기관들에 따르면 중국 내수시장은 2020년경 1경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1경원은 1조원의 만배 규모다. 현재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흑자를 내는 국가가 중국인데 그 규모는 50조원 내외이다. 향후 1경이란 중국내수시장에서 5%만 점유한다고 해도 500조원을 벌 수 있다. 5천만 한국 국민이 먹고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규모다. 문제는 50조원 규모의 흑자를 내는 것조차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어떻게 10배 이상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혁신협력플랫폼 구축이 해답이다. 중국 공공부문 혁신주체들과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 3,400만 여 개의 중국기업들 중에서 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기업 수는 3천 여 개에 불과하다. 상장된 기업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 관련 정보를 획득하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기업들과 일대일로 거래하는 ‘B2B’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중국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중국 내 지방정부나 공공부분, 특히 R&D능력이 있는 연구기관들과의 협업체제인 ‘B2G2B’모델이 매우 유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엄청난 중국 내수시장을 위해서는 중국과 같이(Made with China), 중국 소비자를 위한(Made for China, Design for China, R&D for China) 정밀한 전략과 이를 위한 혁신협력 플랫폼이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에 편승해 중국과 함께 65개 국가에 진출할 수 있도록 중국 내 일대일로 핵심 18개 도시에도 혁신협력 플랫폼이 구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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