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했다. <사진=BBC 홈페이지 캡처>

 

[이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며 중동 정세에 불을 지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준비를 국무부에 지시하고, 7일에는 유태계 인사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를 축하하며 논란을 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예루살렘 문제의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아랍 국가들 전체가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알자지라, 예루살렘포스트 등의 외신에 따르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용인할 수 없는 조치들은 평화를 이루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고의로 훼손한 것이며, 미국이 지난 수십년간 평화를 지지하며 맡아온 역할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또한 “주이스라엘 미 대사관을 이전하는 것은 전세계 무슬림을 자극하는 위험한 도발”이라고 우려했다.

 

◇ 이슬람교의 성지 예루살렘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발언이 당사자인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아랍국가의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에서 가지는 ‘성지’로서의 상징성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하나의 신, 두 개의 민족, 세 개의 성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종교와 민족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루살렘이 이슬람교의 성지가 된 것은 창시자인 무함마드와 관련이 있다.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던 무함마드는 유대교 경전인 모세오경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이슬람교의 경전으로 포함시켰고 아브라함, 노아, 예수 등 유대교 경전과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위대한 예언자로 존중했다. 때문에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은 초기 이슬람교 최고의 성지이기도 했으며, 이슬람교도들도 기도할 때 메카가 아닌 예루살렘을 향해 절을 했다. 이는 향후 무함마드가 유대교 지도자들과 갈라서고 아랍 부족을 포섭하면서 메카를 제1성지로 선언할 때까지 지속됐다.

또한 예루살렘은 무함마드가 승천해 신을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천사 지브릴의 도움으로 메카에서 예루살렘을 경유해 천국에 올라 옛 예언자들을 만난 뒤, 신에게 계시를 받고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8일 YTN 인터뷰에서 “무함마드가 예루살렘에서 하늘로 승천해 알라를 만나고 왔다고 주장하는 중요한 성지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성스럽다는 뜻의 아랍어인 ‘쿠드스’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무함마드가 승천을 했다고 여겨지는 장소는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템플마운트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구역에는 알아크사 모스크가 세워져 전세계 이슬람교인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예루살렘 구 시가지는 현재 이슬람교, 유대교, 개신교,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4분할돼있으며 이슬람교 구역은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기독교, 이슬람교, 템플마운트, 유대교, 아르메니아인 구역이다.

 

◇ 트럼프 말 한 마디에 고립된 미국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는 3개 종교로 분할돼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2개 국가로 분할돼있으며, 법적으로는 그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다.

2차대전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엔은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별개의 구역으로 지정하는 결의안 181호를 발표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요르단 영토였던 동예루살렘을 점령하고 1980년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현재까지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어떤 구성원도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한 적은 없다.

게다가 동예루살렘은 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향후 독립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도로 예정돼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유태인 정착촌을 다수 건설·확장하며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을 침범해 지속적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 10월에는 예루살렘 시장이 동예루살렘 지역에 신규 주택 176채의 건설을 승인하며 “현장에서 행동으로 예루살렘을 재통합한다”고 밝혀 팔레스타인 당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발언함으로서 유엔의 결정, 미국의 기존 중동정책을 비롯해 분쟁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의 입장도 완전히 무시한 채 이스라엘편을 든 셈이다. 현재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서는 연일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며, 아랍권을 제외한 국제사회도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한 말 한마디에 미국의 외교적 고립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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