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가상화폐 거래소 게시된 비트코인 가격. 불과 며칠 전에 비해 1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지면서 가상화폐를 통화로 인정하고 관련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정부 개입 시 오히려 가상화폐에 공신력을 더해 투기열풍만 조장할 것이라며 섣부른 개입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모두 가상화폐 이슈에 몰두하고 있다. 며칠 전만해도 1400만원대 초반을 유지했던 비트코인이 지난 6일 오후부터 급격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8일 오전 10시10분 2481만2000원을 기록했기 때문. 몇몇 누리꾼들은 “대장(비트코인)만 믿고 가겠다”며 거액의 투자내역을 인증하기도 했다.

국내 가상화폐 열풍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 5월에는 연초 1만원 가량에 거래됐던 이더리움이 35만원까지 폭등했고, 10월까지만 해도 40만원을 넘지 못했던 비트코인캐쉬는 11월29일 179만6천원까지 가격이 뛰어올랐다. 이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익률이 빈번하게 나타나자 국내 가상화폐 거래 규모도 엄청나게 성장했다. 현재 전세계 비트코인 거래량 중 원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4.34%로 엔화, 달러, 유로화에 이어 4위다. 지난달 초 비트코인캐시 열풍 때는 잠시나마 전세계 비트코인캐시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국내 거래소에 몰리기도 했다.

투기적 성격이 강한 가상화폐 투자가 성행하면서 규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 국내에는 가상화폐를 규제할 마땅한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국세청과 기획재정부도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며 금융당국도 아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통화별 비트코인 거래 점유율. <자료=크립토컴페어 홈페이지>

 

◇ 가상화폐 통화 인정한 일본

이 때문에 일찌감치 가상화폐를 법적인 지급수단으로 인정한 일본의 사례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일본은 현재 세계 최대의 가상화폐 거래국이다. 비트코인 거래에서 엔화의 점유율은 8일 기준 무려 38.7%에 달한다. 일본이 가상화폐 거래 1위로 올라선 것은 중국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가상화폐 관련 제도 정비도 주된 이유다.

일본이 본격적인 가상화폐 관련 법안의 마련에 나선 것은 지난 2014년 발생한 마운트곡스 사태다. 일본에 본사를 둔 가상화폐 거래소 마운트곡스는 당시 해킹사고를 당해 비트코인 약 85만개(4억4700만달러 규모)를 손실했다. 이 사태로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하고 결제 시스템을 안정화하기 위해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발의, 2016년 5월 국회에서 통과시킨 뒤 올해 4월1일부터 시행중이다.

일본의 자금결제법 개정안은 가상화폐를 ▲불특정 다수간의 지불수단기능 ▲법정통화와의 교환기능 ▲전자거래기능 등의 ‘재산적 가치’를 가진 결제수단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법정통화는 아니지만 실제 통화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정당한 결제수단으로서 인정한 것.

또한 거래소 인가제도 도입됐다. 개정안은 일정 수준의 자본, 순자산 등의 요건을 충족하고 정부에 등록한 업체만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거래내역, 수수료, 시스템안전 관련 사항 등을 정기적으로 공인회계사나 감사법인에게 감사받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해당 감사내용을 정부에 보고하고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명시했다.

정부에서 규제안을 마련하자 일본 내 가상화폐 이용자 수는 오히려 급증했다. 거래소 인가제가 시행되면서 이용자들이 ‘가상화폐가 정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7월 일본 정부는 소비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가상화폐 거래 시 부과돼왔던 소비세도 폐지했다. 가상화폐를 통화로 인정해온 유럽과 달리 일본은 가상화폐를 여전히 자산으로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에 따라 일반적인 상품 거래와 같이 가상화폐 거래에도 8% 가량의 소비세가 부과됐다. 이를 폐지했다는 것은 일본이 가상화폐를 거래 시 면세 대상인 통화로 사실상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현실에서 비트코인을 지급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지난 4월 자금결제법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일본 최대 가전양판점 비꾸카메라(Bic Camera)가 비트코인 결제시스템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비트코인 대금결제가 가능했던 일본 내 점포수는 올해 초 4500개 수준이었지만, 26만개의 점포를 보유한 비꾸카메라가 가세하면서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 일본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가상화폐 거래규모는 날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이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히미노 료조 일본 금융청 차관은 지난 1일 국내에서 열린 제10차 금융감독 협력 세미나에서 “가상화폐를 규제하기 위해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했는데 오히려 투기를 조장한 꼴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개입이 오히려 가상화폐에 공신력을 더해줬다는 것.

실제로 자금결제법 개정안 시행으로 거래소 인가제가 도입된 이후, 일본 내 일부 거래소들은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사실을 내세워 홍보에 몰두했다. 가상화폐 거래는 정부가 인정한 안정적 투자라는 식이다.

지난 4일 가상화폐에 관한 국회 공청회에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오른쪽)이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가상화폐를 통화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 때문에 국내 금융관계자들은 가상화폐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섣부른 정부 개입이나 가상화폐의 통화 인정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개최한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에서 “코인은 환상이다. 인가제를 도입한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며 “금융위가 거래소를 인가하면 공신력을 부여해 투기를 부추길 우려가 높다”고 발언했다.

금융당국은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 거래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소비자 보호수단을 갖춘 거래소만 예외적으로 거래를 허용할 방침이다. 가상화폐를 사실상 통화로 인정하며 빗장을 활짝 연 일본과는 대조적인 대응이다.

가상화폐 시장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폭락과 폭등이 반복되는 비정상적 투기시장이다. 따라서 어떤 방향에서든 규제의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 일본은 가상화폐를 제도권 내로 끌어안으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지만, 멈추지 않는 투기 열풍이 부작용으로 발생했다. 정반대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우리 금융당국의 대응이 투기열풍을 잠재우고 안전한 지지대를 확보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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