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실험이 오히려 대화의 기회라고 강조한 뉴욕타임스의 11월29일 기사. <사진=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이코리아북한이 지난달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실험발사하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위기감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스텔스 전투기 24대가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 ‘비질런트 에이스’가 진행 중이며, 미국 주요 안보관계자들도 군사적 대응의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국내 언론들도 화성-15형 발사 후 일주일간 트럼프 내각 관료 및 정치인들의 강경 발언을 연이어 보도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보좌관의 “북한과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발언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의 “주한미군 가족을 철수시켜야한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해당 발언이 보도된 후 한반도 전쟁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도 다시 높아졌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의 강경발언과는 달리 미국 언론과 학계는 오히려 대화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국제문제 평론가인 임상훈 인문결연구소 소장은 지난 5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전문가 그룹에서는 이제 서서히 미국과 북한 양측이 대화에 임할 때가 됐다는 주문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목소리가 미국 언론에 광범위하게 보도되고 있는 반면 국내 언론에는 잘 소개가 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 주요 언론매체들은 북한의 화성-15형 발사 후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비난하며 북미대화를 촉구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다수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오히려 대화의 기회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 핵실험의 목표는 전쟁이 아닌 대미 협상력의 강화라며, 북한이 기술적 목표를 달성한 지금이 바로 미국이 대화를 제안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니엘 러셀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또한 이 기사에서 “김정은이 지난 실험을 승리라고 선언한 것은 도발을 중단하고 핵무장의 단계적 축소를 제의해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며 뉴욕타임스의 논조에 힘을 실었다.

워싱턴포스트 동아시아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PBS의 ‘프론트라인’ 리포터로 활동 중인 블레인 하든 또한 지난달 28일(현지시간)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하든은 “가장 덜 나쁜 해법(the least bad solution)은 대화인데, 트럼프 정부의 행동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누구와 대화할 지, 미국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왜냐면 트럼프 대통령이 내일 당장 트위터를 통해 (자기가 한 말을)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보수파도 북미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레이건 전 정부에서 특별보좌관을 지낸 더그 밴도우 케이토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북한과의 전쟁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사진=CNS뉴스 홈페이지>

북미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보수 진영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케이토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자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역임한 더그 밴도우는 지난 5일 CNS뉴스에 ‘북한과의 전쟁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논설을 발표했다. 밴도우 연구원은 논설에서 “워싱턴은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접근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전쟁과 (핵보유) 인정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대화가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왔던 선례도 있다. 국제관계전문가 조나단 마샬은 지난 1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클린턴, 카터 전 대통령은 선제공격을 옵션으로 고려치 않았으며, 대화를 통해 1994년 역사적 합의(제네바합의)를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제네바합의 이후 북한은 핵발전시설을 지원받는 대가로 수년간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했으며, 미국도 북한의 핵 시설을 정기적으로 감시할 수 있었다.

마샬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협상의 가능성을 단절시켰다고 비난한 뒤, 북미 대화를 미룬다면 1968년 북베트남과의 대화를 거절한 것과 같이 자멸적인 결과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미국 언론과 학계에는 “대화만이 해법이다”라는 공감대가 진영을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형성돼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북한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핵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핵프로그램의 단계적 폐지와 대북제재의 철화를 교환하는 북미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 소장은 트럼프 내각이 언론과 학계의 요구와는 달리 강경한 발언을 연일 쏟아내는 이유를 미국의 이익과 연관 지어 설명했다. 한반도 위기감이 고조되는 것이 미국의 무기판매에 유리하다는 것. 임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이 미국은 한국 정부에 수조 원 어치의 무기를 팔아치웠다”며 “미국 정치권의 한반도 위기조성이 미국 군수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장점 외에 한반도 정세 안정에 무슨 기여를 했느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장기적인 한반도 긴장 완화보다는 단기적인 미국의 무역이익이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 정치권의 강경발언만을 소개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는 국익 보다는 미 군수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일 수 있다.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는 균형잡힌 보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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