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신 DTI의 구체적인 산정 방식을 공개했다. 다주택자와 임대업자에 대한 신규 대출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종합대책의 구체적인 모습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정부 대책이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금융회사 여신심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10·24 가계부채종합대책의 핵심 내용인 신DTI(총부채상환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RTI(이자상환비율) 등의 구체적 산정방식을 공개했다. 특히 신DTI의 경우 한 달 뒤인 내년 1월부터 실제 여신심사에 반영될 예정이다.

DTI는 차주의 대출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상환능력을 수치화하고 이를 기초로 주택담보대출 한도액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신DTI에서는 소득과 부채 모두 평가 방법이 엄격해졌다. 소득의 경우 현행 DTI에서는 1년 소득만 확인했으나 신DTI에서는 최근 2년간의 증빙소득 확인이 의무화됐다. 부채도 현행 DTI에서는 기존 주담대 원금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신 DTI에서는 모든 주담대 원리금이 부채로 계산된다.

금융위는 실수요자를 배려해 청소년, 신혼부부 등은 2년간 증빙소득 확인 의무를 면제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주택 보유자들로서는 기존 주담대 원금이 상환능력 평가에 반영되면서 대출규모 축소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 부동산 경기부양의 부작용, 가계부채

가계부채와 부동산은 긴밀하게 연결돼있다. KDB산업은행 조사부 오세진 박사는 지난 1월 ‘최근 가계부채 현황과 위험요인 점검’이라는 글에서 박근혜 정부의 주택경기 부양을 위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 정책과 주택공급량 부족으로 인한 전세가격 상승 등을 최근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과거 정부에서 경기 부양을 위해 LTV, DTI 상한을 완화하면서 고삐를 풀었던 것이 현재의 막대한 가계부채로 이어졌다는 것.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담보가격 역시 상승하므로 가용 대출규모도 상승한다. 또한 기대심리로 인해 대출을 받아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투자자도 늘어난다. 마침 정부에서 DTI 규제를 완화해주니 늘어난 주택담보대출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게 된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은 다시 상승한다. 주담대 증가가 부동산 과열을 불러오고, 시장 과열이 다시 부채규모를 늘리는 악순환이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인한 과다차입을 방관하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과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대규모 금융위기로 발전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차입자 건전성을 강화하는 신DTI 등의 규제를 통해 과거 부동산 활성화 정책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것도, 가계부채 리스크를 관리해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금융위기 시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 DTI 규제, 부동산 가격에는 영향 미미해

신DTI와 같은 규제의 필요성은 모두 동의하지만, 신DTI가 기대대로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도 DTI 규제 강화가 부동산 가격 안정과 가계대출 증가세 완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역대 정부에서 여러 번 DTI 규제 강화책을 발표한 바 있지만 꼭 가계부채 감소 및 부동산 시장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06년 3월 정부는 투기지역 내 6억 이상 아파트에 대해 DTI 40% 적용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 이후 0.6%였던 아파트가격 증가세는 오히려 0.9%로 상승했고, 주담대 증가율도 0.4%에서 1.4%로 올랐다. DTI 규제 강화가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 반면 같은 해 11월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6억 초과 아파트에 DTI 40% 적용 방안이 발표되자, 금융당국의 기대대로 아파트 가격 증가율은 1.9%에서 1.1%, 주담대 잔액 증가율은 1.5%에서 0.7%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DTI 규제 강화의 효과가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에 몇몇 전문가들은 DTI 규제강화의 효과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특히 DTI 규제를 강화해도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박종한 KDB산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2015년 발표한 ‘LTV·DTI 규제의 효과분석 및 시사점’에서 DTI 규제를 강화해도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유의미하지 않았다며 “DTI에 비해 LTV를 통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더 효과가 높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11년 연구보고서에서도 DTI 규제 강화가 한국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

심지어 신DTI를 통한 주담대 규제가 오히려 가계부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교수는 27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가계부채 1400조원 중 주담대는 560조원 뿐”이라며 “나머지 신용대출을 어떻게 줄이느냐는 대책에서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주담대 규제로 건설경기가 악화되면 서민 소득이 줄어들어 오히려 생계형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부동산 거래량 감소, 가계대출 억제는 효과 뚜렷

반면 DTI 규제 강화가 장기적인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적인 금융위기 예방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LTV, DTI 등의 거시건전성 정책을 도입하는 국가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또한 부동산 가격보다도 거래량 감소를 통해 시장 과열을 막고 가계부채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IMF의 2011년 연구보고서는 DTI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완화하는 효과는 없으나, 부동산 거래량을 감소시키는 효과는 뚜렷하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DTI 규제 강화 발표 시점부터 1개월·3개월·6개월 후 모두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거래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영도 연구위원 또한 2014년 발표한 ‘LTV, DTI 규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고찰’에서 “DTI 규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2007년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율과 아파트 가격지수는 상당히 안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DTI 규제의 가계부채 억제 효과에 대해서는 다수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승석 부연구위원이 지난 7월 발표한 ‘LTV, DTI변화가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및 거시적 파급효과 분석’에 따르면, 시뮬레이션 분석 결과 DTI 10% 규제 강화 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위원은 “우리 경제의 가계부채 수준은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위험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면서 “가계부채 총량을 최대한 줄이면서 동시에 가계부채의 질적인 개선을 목적으로 한다면 DTI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 신DTI는 시작, 실질소득 성장정책 필요

금융당국의 신DTI 규제는 과거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의 부작용인 가계대출의 급증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 결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과도한 DTI 규제의 경우 경기를 위축시킬 수 있고, 주담대 문턱을 넘지 못한 차주들이 신용대출로 몰리는 풍선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DTI 규제의 단기적인 대출규모 감소 효과는 뚜렷하지만, 장기적으로 균형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 의해서만 악화된 것은 아니다. 저성장의 지속으로 취약계층 소득수준이 정체, 또는 하락하면서 생계비 명목의 신용대출 및 비은행권 기타대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소득이 줄어든 자영업자들도 사업비를 충당하기 위해 가계대출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이처럼 소득 부진으로 인한 대출확대는 고위험군 차주를 양산해 향후 가계대출 부실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KDB산업은행 오세진 박사는 “장기간의 저성장세 지속으로 소득 1,2분위 계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있어 이들 가구의 상환부담 증가에 따른 가계대출 부실화 문제가 우려된다”며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 등 소득 기반 확대를 통해 한계가구가 증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TI는 둑에 난 구멍을 막아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할 뿐, 수위를 낮춰 위험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의 실질적 해소를 위해서는 소득 주도의 경제정책을 통해 취약계층의 상환능력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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