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9년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사진은 지난 8일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미국이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지난 2008년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한지 9년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북한은 국제사회를 향해 핵 위협을 계속해왔을 뿐만 아니라, 해외 영토에서의 암살 등 국제적인 테러리즘을 반복해서 지원해왔다”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번 재지정을 통해 북한 및 북한 관계자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를 부과할 것이며, 살인자 정권을 고립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러지원국(State Sponsors of Terrorism)이란 미 국무부에 의해 ‘국제적인 테러행위를 반복적으로 지원한 국가’로 규정된 나라를 의미한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무기수출통제법, 대외원조법, 수출행정법 등의 규정에 따라 ▲ 무기 수출입 금지 ▲ 긴급 식량지원 등 미국의 원조제한 ▲ 테러 위험이 있는 이중 용도 품목의 수출 금지 ▲ 금융거래 금지 등의 제재를 받게 된다.

현재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국가는 북한을 비롯해 이란(1984년), 수단(1993년), 시리아(1979년) 등 4개국이다. 북한의 경우 지난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와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인해, 1988년 처음 테러지원국에 지정됐다.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뒤 북한은 외교관계 등 대외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고 국제 금융기구의 금융 지원도 중단됐다. 이후 북한 미국을 상대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북한은 2008년,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수용하고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을 조건으로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됐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위해서는 해당 정부의 테러 지원에 대한 입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으며, 6개월간 테러 지원 행위 및 지지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미 의회에 입증해야 한다. 미 국무부도 북한이 1987년 이후 테러 행위를 지원한 사례가 없다고 보고하면서, 해당 안건은 의회를 통과했다.

북한의 이번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2008년 명단 제외 이후 9년만이다. 문제는 1987년 이후 북한의 테러 지원 행위가 명확하기 입증된 적이 없다는 것. 단 하나, 지난 2월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발생한 김정남 암살 사건은 예외다. 김정남 암살 사건은 테러 행위가 명백하고 전세계의 이목을 끈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 개인에 대한 테러를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테러와 동일시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이 사건은 말레이시아 법원의 판결이 아직 나오지 않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은 시기적으로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이보다는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후 사망한 오토 웜비어 사건이 더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다른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아시아 순방에서 중국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자,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결정했다는 시각도 있다.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나 김정은과 면담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결국 중국을 통해 북미대화 조건을 협상하려던 미국의 요청을 북한이 거부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도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같은 압박수단을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번 테러지원국 재지정으로 인해 북한은 다시 국제무대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에 몰리게 됐다. 하지만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따른 추가적인 제재 효과는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미 유엔 결의안을 통해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국제사회에 북한 정권의 잔혹함을 알리는 일종의 상징적인 퍼포먼스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 안보전문가들 중에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반대하는 이도 있다.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는 20일 뉴욕타임즈와 인터뷰에서 “집권자의 가족살해는 국제적인 테러행위 관여의 증거로 보기 어렵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비생산적이며 끔찍한 오판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이 9월15일 이후 미사일 발사실험 등 군사도발을 중단한 상황에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이 협상할 의지가 없다고 오판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 갈루치는 “이번 조치로 북한을 설득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면서 대화 실종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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