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열린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KB금융노조가 제안한 하승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사진=뉴시스>

[이코리아] KB금융지주가 하승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부결시키면서 노동이사제도입이 무산됐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노동이사제의 민간 도입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KB금융지주는 20일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KB금융 노동조합이 제시한 하승수 변호사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부결시켰다고 밝혔다. KB금융 주식의 9.68%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선임 찬성 의견을 내면서 재계를 긴장시켰지만, 약 70%에 달하는 외국인 주주들이 압도적인 반대표를 행사해 부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이사제, 또는 근로자이사제는 노동조합이 선출한 대표를 발언권과 의결권을 가진 이사로 선임해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도모하는 제도로, 이미 유럽에서는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에 도입돼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가 지난 2016년 9월, 상시근로자 100인 이상인 16개 기관에 노동이사 임명을 의무화한 조례를 제정했으며, 올해 7월에는 서울연구원에서 처음으로 노동이사가 임명되기도 했다.

20일 KB금융지주 주주총회는 노동이사제 민간 도입의 향후 전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일종의 전초전이었다. KB금융노조는 지난 9월부터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당시 KB금융노조는 윤종규 회장이 차기 후보를 선정하는 이사회 내 위원회에 포함되는 등 후보 선정 절차가 공정하지 못하다며 이를 감시하기 위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 경영간섭 우려, 국내 현실에 맞지 않아

KB금융지주의 노동이사제 부결 소식을 접한 재계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민간부문까지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노동자들에 의한 경영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것. 실제로 재계 단체들은 그동안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5월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노동자이사와 경영진 대립으로 이사회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결국 그 손해를 주주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또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상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화된 이사회 체제를 운용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가 선임한 이사는 감독이사회에 소속돼 경영권에는 간섭하지 않고 감시·감독의 업무만 수행한다. 반면 단일이사회 체제를 운영 중인 한국의 경우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감시·감독보다는 경영간섭을 통해 노조 이익을 대변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

 

◇ 경제민주화 해법

반면 찬성측은 기존 경영계의 독단에 제동을 걸고 심각한 노사갈등을 완화할 대안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박태주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한국에서 ‘근로자 이사제’의 도입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글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산업평화 효과는 물론 그것이 경영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효율성 저하와 노사 갈등 악화라는 재계의 반대논리와는 정반대다.

박 교수는 노동이사제 도입의 효과로 ▲ 내부 감시와 견제로 인한 경영 투명성 제고 ▲ 경영진과는 다른 노동자들의 노하우를 통한 성과향상 ▲ 소통을 통한 의사결정으로 노사 갈등 완화 등을 들었다. 특히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해 노사 간 소통 채널을 확장함으로서 기존의 단체교섭으로는 불가능했던 노사갈등의 해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영권 침해에 대한 재계의 우려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 대표이사의 수가 대부분 전체 이사 수의 1/3 정도이며 독일의 경우는 2000명 이상의 기업인 경우 1/2까지 차지하기도 한다. 반면 국내의 경우 노동자 대표이사가 선임된다 하더라도 1표의 의결권밖에 행사할 수 없어 실질적인 경영 개입이 불가능하다는 것. 노동이사제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경영권 간섭에 대한 우려보다는, 어떻게 노동자 대표이사의 영향력을 보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국민연금 찬성표, 정부의지 확고해

이번 KB금융지주 임시총회에서는 노동이사제 도입이 무산됐지만,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재계도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약 300개 국내 기업에 5%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때문에 만약 국민연금이 지분을 소유한 타 기업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가 촉발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질 확률이 높다.

또한 KB금융노조도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노동이사제 도입 안건을 재상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임시 주총에서는 무산됐지만 다음 정기 주총에서는 상황에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노동이사제 도입 찬성이 문재인정부의 코드에 맞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공공부문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노동이사제 도입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근거는 없지만,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정부의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과 국민연금의 찬성의견으로 인해 당분간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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