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CNN 홈페이지>

[이코리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친족들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빈 살만 왕자는 4일(현지시간) 반부패위원회를 열어 자신의 왕위계승권을 위협할 수 있는 왕자 11명을 비롯해 전·현직 정치인, 기업가 등 수십명을 부패 혐의로 구금했다. 숙청이 시작된 다음날인 지난 5일에는 전 왕세제 무크린 왕자의 아들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가 원인불명의 헬기추락사고로 사망해 의구심을 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작업은 현 살만 국왕이 왕위계승제도를 바꾸면서 시작됐다. 사우디의 기존 왕위계승제도는 형제세습으로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가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무려 44명의 왕자를 낳은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는 왕위계승을 둘러싼 잡음을 줄이기 위해 형제세습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세습을 하다 보니 왕위계승자들의 연령이 점차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했다. 초대 국왕의 아들들이 연달아 국왕자리를 물려받게 되면서 취임 연령이 점차 상승했고, 현 살만 국왕은 2015년 80세의 나이로 국왕 자리에 올랐다. 이 때문에 살만 국왕은 이복동생 무크린 왕자를 왕세제로 책봉했다가 석 달 만에 실각시키고, 큰조카인 무함마드 빈나예프 왕자를 제1왕세자, 친아들 빈 살만을 제2왕세자로 지명하며 아들 세습을 천명했다.

하지만 살만 국왕은 친아들인 빈 살만 제2왕세자를 사실상의 계승자로 지지하면서 빈나예프 왕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결국 부친으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은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 6월 친위부대를 동원해 26세나 많은 사촌형 빈나예프 왕자를 왕세자 자리에서 폐위시켰다.

빈 살만 왕세자는 초대 국왕의 여덟 번째 부인인 수다이리의 손자로, 왕실 주류 파벌인 수다이리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수다이리파는 5대·7대국왕을 배출했을 정도로 강력한 권력기반을 갖췄으며, 이를 통해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 작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작업은 이번 달 들어 반부패위원회의 설립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빈 살만은 4일 반부패위원회를 설립하고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 등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수십명을 체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7일(현지시간) 사우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체포된 왕자들의 개인 은행계좌 1200개를 동결했다”면서 “사우디 정부가 부패혐의를 단속해 8000억 달러(약891조3600억원) 상당의 자산 압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 또한 지난 8일 정치·경제 분야의 엘리트들이 추가로 구금당하면서 부패혐의 수사대상이 수백명으로 확대됐고, 동결된 사우디 국내은행의 계좌 수도 17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작업을 단순한 권력기반 다지기가 아닌 그가 추구하는 사우디 개혁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나 여성 운전을 허용하고 비키니 착용이 가능한 관광특구를 개설하는 등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석유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아부다비의 친환경 국제도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아랍에미리트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제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지난달 24일 월가 관계자들을 수도인 리야드로 초청해 5000억달러 규모의 네옴 신도시 개발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숙청을 통해 몰수된 자금 또한 향후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구상을 실현하는데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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