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총격 사건이 벌어진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의 제1침례교회를 경찰 수사 중인 모습.  <사진=CNN 홈페이지 캡쳐>

 

[이코리아] 미국에서 또다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텍사스에서 26명이 사망하는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미뤄져왔던 총기규제법안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총기소유를 개인의 기본권으로 생각하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과 미국총기협회의 로비로 인해 총기규제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26명 사망한 텍사스 총기난사사건

CNN, AP통신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이번 총기난사 사건은 지난 5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서덜랜드 스프링스에 위치한 제1침례교회에서 발생했다. 범인은 오전11시20분경 교회에 침입해 예배를 보던 신도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로 인해 최소 26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했다. 범인은 인근 주민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도주하다 자살한 상태로 경찰에게 발견됐다.

범인은 26세의 남성 데빈 패트릭 켈리로 2010년부터 뉴멕시코에 위치한 홀로만 공군기지에서 복무했다. 2012년 켈리는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폭행혐의로 1년간 수감됐으며, 2014년 불명예제대했다. 켈리는 이후 교회에서 35마일가량 떨어진 텍사스주 뉴브라운펠에서 거주해왔다. 사건 당시 켈리는 방탄조끼까지 갖춘 완전무장 상태로 교회에 침입했으며 AR-15 반자동 소총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가 총기를 구입한 경로와 범행동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 올해 총기사고 사망자만 1만3천명

이번 총기난사사건은 지난 달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상 최대규모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지 채 한 달만에 벌어진 것으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 스티브 패덕은 호텔 32층에서 음악축제에 참가 중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해 59명이 사망하고 52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2016년 6월26일 발생한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이후, 17개월동안 20명 이상이 사망한 대규모 총기난사 사건만 해도 이번 사건까지 총 3건이다. 

미국 비영리단체 총기폭력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대규모 총기난사 사고는 모두 307건으로 총 399명이 사망하고 1644명이 부상당했다. 이는 조직폭력단, 강도, 개인적 원한 등의 총기 사고 사망이 아닌 총기난사 사건만을 집계한 것으로, 2017년 전체 총기사고 건수는 5만2401건, 사망자는 1만3155명, 부상자는 2만6949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43.7명이 총기 사고로 사망하는 셈이다.

2017년 미국 무차별 총기난사(Mass Shooting) 사건 발생 지도. <사진=총기폭력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 홈페이지 캡쳐>

◇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어려운 이유

대규모 총기사고가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인들의 총기소유에 대한 사고방식 때문이다. 미국인들에게 총기소유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과 직결된 기본권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헌법에도 나타나 있다.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행정력이 부족해 개인의 생명을 치안시스템이 보호할 수 없었던 초기 개척시대에 형성된 사고방식이 헌법을 통해 여전히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는 막강한 자금으로 정치권에 로비를 행사하는 전미총기협회(NRA)가 있다. NRA는 총기규제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한번 총기규제가 시작되면 결국 개인의 총기소유 권리까지 부정될 것이라는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 이론으로 총기규제에 반대해왔다. 

NRA는 지난 대선에서 총 5868만 달러(약 665억원)을 들여 의회에 로비하는데 사용할 정도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자랑한다. 뉴욕타임즈의 지난달 5일 보도에 따르면 NRA는  주로 총기규제에 부정적인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엄청난 규모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상원에서는 공화당 소속 존 매케인 의원이 774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으며, 하원에서도 프렌치 힐 의원이 109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NRA에서 제공한 기부금 순으로 정렬해보면 하원에서는 상위 99명이 모두 공화당 의원이었으며, 상원에서도 상위 51명이 공화당 의원이었다. 현재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공화당이 NRA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는 한 총기규제법안의 통과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미 다수의 미국인들이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독일의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정 이상의 총기를 보유한 가구가 미국 전체 가구의 약 42%에 달한다. 100명당 총기보유수도 89정에 달해, 내전을 겪고있는 2위 예멘의 55정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처럼 많은 총기를 어떻게 회수하고 관리할지도 현실적인 총기규제의 난점이다.

 

◇ 트럼프, 총기사고는 개인의 일탈

일본을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이번 사태에 대해 “우리가 희생자들에 대해 느끼는 고통과 슬픔은 말로 옮길 수 없다”며 “미국인들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뭉쳐서 손을 잡고 팔짱을 끼며 눈물과 슬픔을 통해 강하게 맞서야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기규제론에 대해서는 “총기 문제가 아니라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건강 문제”라며 선을 그었다.

지난달 있었던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 이후 NRA는 반자동소총을 자동소총처럼 사용할 수 있게하는 부품인 ‘범프스탁’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론의 눈치를 살핀 바 있다. 하지만 범프스탁의 전면 금지가 아닌 일부 규제안일 뿐더러 그마저도 의회에서 이 사안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난사를 개인의 일탈문제로 치부하고,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NRA의 영향력 하에 총기규제 논의를 도외시하는 동안 미국의 총기 사고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텍사스에서 일어난 비극이 미국 총기규제 움직임에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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