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학회가 20일 발표한 '청탁금지법 1년과 한국사회: 투명성, 공정성, 신뢰성에 미친 효과'에 따르면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4%는 청탁금지법 시행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뉴시스 제공>

[이코리아]28일은 일명 ‘김영란법’이라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시민 10명 중 8명은 이 김영란법의 효과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 접대비가 크게 줄어들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두드러진다. 반면 접대와 회식이 줄어들면서 식당가가 타격을 받고, 명절 때 주로 선물했던 농축수산물의 판매가 줄면서 농어민들이 직격탄을 받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 접대비 대폭 감소

기업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기준 상위 139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반기 접대비는 총 970억원으로 집계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인 작년 상반기와 비교해 15.1%(173억원) 줄어든 규모다.

 

조사대상 기업 가운데 접대비를 줄인 곳은 102개사(73.4%)에 달했다. 유한양행이 1년 새 81.4%를 줄이며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고, 엔씨소프트와 대웅제약도 70% 넘게 줄였다. 금호산업(59.1%), 롯데쇼핑(57.2%), GS홈쇼핑(52.6%), 대유에이텍(51.8%), 네이버(51.1%) 등도 접대비 지출을 절반 이상 줄였다. 업종별로 보면 제약업종이 51.2% 줄어들어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고 ▲조선·기계·설비(38.4%) ▲서비스(29.9%) ▲유통(25.1%) ▲자동차·부품(20.3%) 등이 뒤를 이었다.

 

증권사들의 접대비도 눈에 띄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48개 증권사의 올해 상반기 접대비 지출은 592억원으로 전년 동기(639억원) 대비 14.6%(101억원) 감소했다.

 

청렴한 공직 문화가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관가에서의 저녁 술자리 약속이 크게 줄었고, 2~3차는 옛말이 됐으며 청탁 거부도 쉬웠졌다.

 

세종시의 한 공무원은 “예전에는 기업체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음료수 등을 사오는 경우가 많았다. 또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면서 인사 청탁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며 “김영란법 시행이후엔 서로 서로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체 직원들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한 여의도 증권맨은 “내가 갈 자리가 아닌데도 불필요하게 불려가서 술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영란법 시행 이후엔 그런 일이 없어졌다. 덕분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게 됐고, 취미활동도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고급 한정식 매출 급감

반면 음식점들의 매출은 크게 줄었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 후 1년 국내 외식업 영향’ 조사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식업체의 66.2%가 매출이 줄었다. 외식산업연구원은 음식점 평균 매출 감소율은 22.2%로, 외식 시장 전체로 환산하면 김영란 법 시행 전에 비해 매출이 14.7%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와중에 ‘2018년 시급 7530원’이 적용되면 수익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란 게 외식업체의 주장이다. 때문에 외식업체들은 3만원인 김영란법의 식사 상한액을 평균 6만8500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업종별로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법인카드 승인금액은 83조1500억원으로 ‘김영란법’ 시행 전인 전년 상반기(82조3100억원) 승인금액 대비 1% 가량 늘어났다. 개인카드 상반기 승인금액도 전년대비 11% 가량 증가했다. 이는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접대비가 감소해 전체 승인 실적이 둔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기우에 그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관련 업종별 사용액 추이를 통해 확인됐다. 고급 한정식 등의 기업 법인카드 사용액이 급감한 반면, 다른 음식점 매출은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증가한 것.

 

비씨카드에 따르면 고급 한정식집의 경우 법인카드의 사용액과 사용 건수가 시행 이전보다 각각 25.2%, 24.2% 씩 줄었다. 접대용 식사가 1인당 3만원선으로 제한되면서 고급 음식점의 이용이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반 한식집과 중국집, 서양음식집은 법인카드와 개인카드 사용액과 이용건수가 모두 늘었다. 법인카드의 사용액은 일반한식 1.88%, 중국집 6.35%, 서양음식 5.27%씩 각각 증가했다. 이 덕분에 고급 한정식집의 매출 감소에도 전체 요식업종의 법인카드 사용액은 법 시행 이전보다 1.61% 늘어났다.

 

◆농축산업계는 직격탄

농축산업계는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조사됐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청탁금지법 시행 후 농식품 분야 영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설 기간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신선식품 선물세트 판매액이 지난해 설에 비해 25.8% 감소했다. 또 화원협회 1천200개소의 거래금액은 1년 전에 비해 33.7% 하락했으며, 한우 식육판매점의 월평균 매출액도 10.5%나 떨어지는 등 농민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김영록 장관은 지난 27일 ‘농업인들에 보내는 편지’에서 ‘3·5·10’(식사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 조항을 ‘5·10·5’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편지에서 “청탁금지법 시행 후 변화된 소비환경에 농업계가 적응할 기간도 없이 현재의 가액기준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시설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자본을 투자한 농가들이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는 현장 의견도 많다”며 농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김 장관은 “식사는 5만원, 선물은 10만원으로 조정하되 연간 선물의 횟수와 총액에 제한을 둔다면 현재보다 더 강화된 기준을 통해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 국민께 부담이 되는 경조사비는 10만원에서 5만원(화환 별도)으로 낮추겠다”며 “조기에 시행령이 개정될 수 있도록 협의해 내년 설부터는 조정된 가액기준이 적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한편 국민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도 병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 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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