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리아] 1980년 격변기에 국무총리를 지낸 신현확 전 총리의 증언록이 출간됐다. 신 전 총리는 2007년 별세했으나 생전에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신 전 총리의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현확의 증언'에 담긴 비화를 공개했다. 신 이사장은 "부친이 생전에 남긴 40시간 분량의 육성 테이프 20개를 바탕으로 증언록을 작성했다"고 출간 배경을 설명했다.

‘신현확 증언’에 담긴 핵심 내용은 ▲신 전 총리가 군부 통치를 막기 위해 대통령 출마를 심각하게 고민 ▲최규하 대통령의 오판 (신군부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고 오해해 사퇴 거부)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선제 개헌과 3당 합당을 전제로 한 내각제 개헌안 제안 등이다.

신 전 총리는 책에서 12.12사태를 '하극상'으로 규정했다. 그는 "군 내부에서 대립하고 갈등해 온 다른 계통을 제거하고 전군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당시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을 조기 퇴진시키고 신 전 총리를 새 대통령으로 추대해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부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겸임 발령하려 하자 신 전 총리가 끝까지 반대한 일화도 소개됐다. 또 군부 통치를 막기 위해 대권 출마를 고민한 사실도 털어놓았다.

전두환 등 신군부 실세와 갈등을 빚은 일화도 공개했다. 1980년 5월16일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이 신 전 총리를 찾아왔다. 신군부는 군 장성 44명이 결의한 시국수습방안이라며 비상계엄 확대, 국회 해산, 국보위 설치를 요구했다. 이에 신 전 총리는 결재를 거부하자 갈등을 빚었고 결국 국무회의에서 안건이 가결되자 다음날 총리직을 사퇴했다.

최규하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비화도 공개했다. 10·26 후 신군부로부터 "최규하를 체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 최 대통령이 10·26 당일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김재규가 범인’이란 말을 듣고도 4시간 동안 침묵해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체포하겠다고 한 것. 최규하가 어떻게 체포를 면하고 신군부와 협조관계로 돌아섰는지에 대해서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최 대통령이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하자 "두 사람이 한배를 탔다"고 생각한 것.

신 전 총리는 "김정렬 전 총리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라며 "최 대통령은 퇴임 직전까지도 신군부가 자신을 지지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김 전 총리가 신군부의 부탁을 받고 최 대통령에게 사임을 권유하자 최 대통령은 "군이 나를 지지하는데 왜 물러나느냐"고 되물었다는 것.  신 전 총리는 "신군부에서 재차 사람을 최 대통령에게 보내 '물러나라'고 하고서야 최 대통령 사임이 이뤄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전두환 회고록에는 "내가 12·12 때 최 대통령을 겁박했다거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몰고 갔다거나 하는 것은 음해"라고 적혀 있다. 최규하 대통령 본인이 가장 진실을 아는 입장이지만 사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신 이사장은 20일 ‘신현확 증언록’과 관련해 "아버지는 10.26 사태 후 유신정치를 철폐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대통령 출마를 막았다. 시국 수습안에 합의해주면 공화당 당의장 자리를 승계시켜주는 조건으로 김 전 총재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이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국민의 분노가 거세졌을 때 노태우 민정당 대표에게 직선제 개헌을 최초로 조언한 분이 아버지다. 이후 여소야대 국회가 출범하자 내각제를 전제로 민정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3당 합당을 권유했다"는 비화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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