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가 없다. 자료가 얼마나 날아갔는지 모르겠다."

20일 오후 2시 KBS의 한 사무실. 작업 중이던 모니터들이 일제히 꺼졌다. 재부팅을 시도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사내방송에서는 "바이러스 유포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한 것 같다. 모든 PC 전원을 꺼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PC와 연결된 랜 선이 뽑혔다. 악성 코드 확산을 막기 위해서다. 백신프로그램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 PC를 켜지 말라는 지시가 더해졌다. 작업 중이던 업무를 날려버린 직원들은 낙담한 채 팔짱을 꼈다. 사무실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다.

대책 마련을 위해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회의 중에도 상황을 묻는 전화가 쏟아졌다. 회의가 끝난 후 e-메일이 아닌 장문의 문자로 답했다. "피해 상황과 원인을 파악 중이다. 제작 파트의 경우 프로그램 준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픽 작업, 음원 삽입 등 프로그램 후반 작업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환됐다. 보도본부에서는 피해를 입은 노트북을 활용해 오프라인으로 기사를 작성, 출력했다. 홈페이지도 차단했다.

라디오 방송의 경우 혼란이 컸다. 인터넷망 마비로 청취자 사연과 문자를 받을 수 없어 멘트와 음악, 전화연결로만 진행됐다. 다수의 음악을 내보내게 됐지만 음원이 저장된 아카이브 시스템 이용이 어려웠다. 음악 CD를 확보하기 위해 걸음이 분주해졌다.

KBS의 어느 직원은 "언제 백신프로그램이 설치되고 다시 컴퓨터를 켜게 될지 기약이 없다.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이날 오후 KBS를 비롯해 MBC·YTN 등의 방송사도 정보전산망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애로 일제히 마비됐다.

MBC는 "컴퓨터가 일시에 종료됐다.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YTN은 "오후 2시20분께 모든 컴퓨터가 꺼지면서 부팅이 안 됐다. 서버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SBS는 지상파 방송사 중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회의를 소집하는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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