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인구 증가로 몇 년 사이 아웃도어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가격에 대한 거품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유명 아웃도어 업체들이 주문자생산방식(OEM) 형태로 제조업체로부터 공급받아 판매하는 '등산용 스틱'의 납품 가격이 단 한 번도 공개 된 적이 없어 적정가격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물론 제반비용 등을 감안해 어느 정도 이익을 남겨야 하는 게 기업 입장이지만 소비자들은 "해도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이번 시간에는 등산 용품 가운데 소모품 정도로 여겼던 '등산용 스틱'의 가격거품 논란에 대해 집중취재 했다. 지난 14일부터 26일까지 약 2주간 4개 납품업체와 서울·수도권지역 유명 아웃도어판매점 30여 곳을 돌며 현장 취재했다. [편집자]


주말마다 산을 찾는 다는 박창수(사업·50·서울시 송파구 잠실동)씨는 등산로 입구 등지에서 판매하는 저가 등산용 스틱을 볼 때 마다 가격에 대한 궁금증을 떨칠 수가 없다. 아웃도어전문점에서 판매되는 스틱이 보통 1개에 7만∼16만 원대 인데 반해 등산로 입구에서 판매 하는 스틱 가격은 10분의 1 가격이면 살 수 있다는 점이 의아스러웠다.

항상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고 등산을 했는데 굳이 비싼 가격을 주고 사야하는 고민이 컸던 때문이기도 하다. 더욱이 몇 일전 등산스틱을 제조하는 한 지인의 말이 그의 궁금증을 더 증폭시켰다. 국산 제품 대부분이 4개의 국내 제조업체가 전량 유명브랜드에 납품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많게는 5분의 1가격에 납품 받아 유명 브랜드 로고만 붙이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는 것. 그는 한 달 전 큰 마음먹고 12만원을 주고 유명브랜드의 스틱을 구매했다. "도대체 내가 스틱을 제값주고, 제대로 산걸까."

취재 결과 노스페이스 (골드윈코리아)를 비롯해 코오롱스포츠 · K2 등 유명 아웃도어 업체들이 등산 스틱을 판매하면서 납품가 보다 평균 4∼5배 정도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유명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거품이 심하다는 지적은 있어왔지만 납품 가격과 판매가격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파문이 클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우리나라 유명 아웃도어 업체 중 스틱을 직접 제조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대부분 OEM 방식을 통해 스틱을 납품받아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소비자는 유명 아웃도어업체가 만든 것으로 알고 구매한다. 일부는 저가 외국산이 수입되어 팔리고 있다.

지난 2주간(14∼26일) 서울시내 및 수도권 대리점과 백화점·쇼핑몰 등에 입점 한 노스페이스·코오롱스포츠·K2·아이더·네파·밀레 등의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등산용 스틱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두랄루민 70(7075, 7001)시리즈'의 가격은 대부분 8만∼9만원 사이였다. 같은 종류임에도 10만원을 넘는 것도 있었다.

가벼운 스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본스틱'은 10만 원 대 초반이 많았고, '두랄루민 TH72M'등을 사용한 제품은 15만8000원까지 판매 중이다.

매장 판매원들은 가격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 "재료와 기술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격이 비싼 것에 대해서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국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취재결과, 이들 가격은 재료 때문에 비싼 게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명 아웃도어 업체들이 과도한 마케팅비용과 지나치게 폭리를 취하고 있는 관행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명 아웃도어 업체의 한 관계자는 "유명 브랜드들이 형성해 놓은 가격보다 싸면 저급 브랜드나 제품으로 인식돼 제품이 안 팔린다. 그래서 가격을 정할 때는 경쟁사의 가격에 맞춰 책정할 수밖에 없다"며 "같은 수준의 제품이라도 광고를 많이 하고 무조건 비싸게 팔아야 고급 브랜드로 생각하고 찾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유명 유통업체에 스틱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Y사를 비롯해 O사, B사, D사 등 4곳이다. Y사와 O사, B사는 국내에서 스틱을 생산 중이다. D사만 중국에 공장을 두고 국내에서 원자재를 현지로 보낸 후 완제품으로 조립·역수입하고 있다. 이외에도 중소유통 업체가 중국과 베트남으로부터 수입, 유통하기도 한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5개 이상의 유명 아웃도어 업체 외에도 기타 아웃도어 브랜드를 포함, 해외수출까지 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등산용품의 품질은 스틱의 대명사로 불리는 스위스의 '레키'와 비교했을 때 전혀 성능과 기술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OEM이나 자체 브랜드로 수많은 해외 유명 아웃도어업체에 수출을 할 만큼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명 아웃도어 업체의 그늘에 가려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업체들이 유명 아웃도어 업체에 납품하는 스틱 가격은 재료에 따라 1만2000원에서 3만5000원 사이.

구체적으로 알루미늄 재질로 된 스틱은 1만2000원∼1만3000원, 두랄루민 스틱은 1만4000원∼2만원, 카본 스틱은 2만7000원∼3만5000원, 두랄루민과 카본이 섞인 알루카본은 1만7000원∼2만원에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간혹 두랄루민 제품의 경우, 보다 경량화 된 수입제품을 사용해서 납품가가 2만원을 초과하는 제품도 있지만, 현재 취급하는 업체는 1~2곳이며 극소량에 불과하다.

사실상 유명 아웃도어 업체들은 4곳의 국내 업체와 중국과 베트남의 하청 업체로 부터 대부분의 스틱을 개당 1만2000원에서 3만5000원 사이의 가격에 납품 받아 7만∼16만원 사이에 판매 중이다.

납품가와 비교했을 때 4~5배 이상의 가격에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가격이 부풀려진 이유에 대해 K2관계자는 "스틱을 제조할 때 재료의 사용이나 제조공정 과정 등을 통해 얼마나 안전하게 만드는지 연구·실험하는데 비용을 쓰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굽힘 시험이나 내구성 시험 등을 만 번 이상 한다"고 말했다.

이어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많다"며 "우리는 좋은 소재를 쓰고 있고 기술력을 따로 넣었다"고 덧붙였다.

또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브랜드마다 아웃도어 제품에 사용되는 재질의 종류가 많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소재가 있다"며 "아웃도어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면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어 "디자인이나 그립감을 좋게 하는 등 이러한 차이 때문에 가격이 달라 진다"며 "한 브랜드에서 어떤 소재를 쓰고 길이와 경량성 등에 따라 나눠 진다"고 강조했다.

노스페이스 관계자는 가격과 관련한 정책을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명 아웃도어 업체들의 이런 주장에 대해 납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납품을 받는 브랜드업측에서 자신들이 요구한대로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디자인 등 외관의 품질검사는 꼼꼼히 하지만 등산용 스틱은 공식적인 품질검사기준이 없다"며 "원재료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사출돼 나올 때는 두랄루민 7075·7001 등 각 소재의 종류에 따라 강도와 탄성 등에서 차이가 날 뿐 같은 등급이면 똑같은 성능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스틱에 대해서는 국가가 정한 KS인증 등 별도의 비교검사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은 없다"며 "실험과 연구 등에 과다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격거품논란에 대해 기업들의 왜곡된 마케팅을 지적했다.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국장은 "최근 유명 아웃도어 업체들이 스타 마케팅이나 간접광고(PPL) 마케팅을 통해 왜곡된 방법으로 소비를 조장하는 등의 윤리성에 문제가 있다"며 "기업들이 이러한 마케팅에 집중하지 말고 소비자에게 좋은 품질의 스틱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좋은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YWCA연합회 안정희 부장은 "상품에 품질 차이도 없고 오히려 더 비싸 고가의 제품의 품질이 안 좋은 경우도 있는데 업체들이 고급화 전략을 통해 조작하는 부분이 있다"며 "이러한 전략은 소비자들을 상당히 현혹시키고, 소비자들도 이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등산용 스틱은 의류처럼 유행이 지나면 재고가 쌓일 만큼 민감한 품목이 아니다"라며 "공급원가(납품가)와 상품에 대한 이익마진인 배수원가를 고려한다고 해도 유명 아웃도어 업체가 직접 연구개발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판매 가격이 납품가격의 두 배 이상을 초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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