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9시께 대전의 한 주택가로 트럭 한대가 들어섰다. 차량에서 내린 세 명의 남성은 낡은 다세대주택 2층으로 올라갔다. 이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곳은 50대 남성이 혼자 살던 20㎡ 남짓한 원룸이었다.

이 곳을 찾은 세 사람은 유품정리 업체 '바이오에코'의 직원들이다. 이들은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50대 남성의 마지막을 '정리'해 주기 위해 집을 찾은 것이다. 이들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이날 기자도 유품 정리에 함께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주, 맥주, 막걸리 등 7~8개의 술병이 어지럽게 놓인 탁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책상에도 역시 술병 10여개가 놓여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은 상태였지만 무엇인가가 부패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불을 켰지만 전구는 깜빡거리기만 할 뿐 방안을 밝힐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바닥에서 걸레로 닦다 만 검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바로 옆에는 피가 묻은 커터 칼이 놓여 있었다. 스스로 손목을 그을 때 사용했던 칼이다. 화장실로 들어가니 지름 40cm 정도의 대야 안에도 응고된 피들이 담겨 있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거주자 A(55)씨는 얼마 전 이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각혈인가? 지병이 있었으면 세균성 소독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박연문(49) 이사는 화장실에 있던 대야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박 이사가 현장을 둘러보고 작업 계획을 세우는 동안 유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눈에 안 띄게 조용히 작업을 진행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유족의 부탁에 따라 위생복을 입지 않고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인이 남긴 흔적들을 살펴보니 쓸쓸함이 느껴졌다. A씨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들의 사진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책상 위에는 어머니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이 때까지 켜진 채로 남아있었던 컴퓨터 모니터 바탕화면에는 딸처럼 보이는 중학생 여자아이의 사진이 미소 띤 얼굴로 우리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살림살이는 단출했다. 침대와 책상, 탁자, 옷장 정도가 전부였다. 옷걸이에는 대여섯 벌의 외투가 걸려 있었지만 그마저도 입은 지 오래됐는지 먼지가 뿌옇게 앉아 있었다. 옷장을 열자 어지럽게 뒤섞인 낡고 헤진 속옷과 티셔츠 몇 벌이 보였다. 책상 서랍 속에는 바둑판, 트럼프, 화투 등이 들어 있었지만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않은 듯 했다.

외로움을 참지 못한 그는 술과 담배에 의존했다. 침대 옆에 놓여있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흡사 고슴도치 등처럼 꽁초가 둥근 원을 그리며 촘촘히 박혀 있었다. 냉장고를 채우고 있던 것은 대부분 술이었고, 쓰레기봉투에는 찌그러진 플라스틱 술병이 가득했다. 전기밥솥 안에는 누렇게 변한 밥이 담겨 있었지만 밥상을 차린 흔적은 없었다. 먹다 남은 소시지와 라면봉지, 빈 우유통들이 몇 개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트럭에서 빈 포대와 상자들을 가져와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우편물, 개인소지품 등은 유품 상자에 담았다. 고인이 즐겨 입던 옷과 구두도 유품으로 분류했다. 그 외의 물건들은 빈 포대 안에 나눠 담았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고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사회에서 고립된 채 외롭게 생을 마감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건물주는 언제부턴가 현관 앞에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작업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 곳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에서 눈에 띄지 않게 일을 처리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직원들은 짐을 옮기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발자국 소리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유족들도 박 이사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직원들은 방 안의 물건들을 남김없이 차량으로 옮겼다. 박 이사는 작업 도중 창가에 설치돼 있던 블라인드를 떼지 않았다며 한 직원에게 핀잔을 줬다. 이들의 작업은 방 안에서 고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가는 과정이었다. 고인은 죽음과 함께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했다.

이웃 주민들은 근처를 지나다 '유품정리'라는 문구가 적힌 트럭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주민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 귓속말로 몇 마디를 나누다 금세 자리를 떠났다. 한 할머니는 트럭 안의 가구들을 보고 '버릴 거면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지만 박 이사는 손사래를 쳤다. 유품을 아무렇게나 처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2시간 정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짐을 옮기자 방 안의 물건들은 모두 트럭에 실렸다. 유품들은 시에서 운영하는 소각장으로 보내졌다.

유품 정리가 끝나자 청소가 시작됐다. 직원들은 먼저 물걸레를 이용해 집안의 핏자국과 곰팡이 등을 닦아냈다. 이어 소독제를 분무기에 담아 방 구석구석에 뿌렸다. 마지막으로 공기 정화제를 연무기에 담아 방 안 곳곳에 여러 차례 분사했다. 하얀 연기가 방 안을 채우면서 마지막 남은 망자의 흔적이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점차 사라지고 신선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유품정리와 특수청소 작업이 모두 끝나는데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직원들은 경기도 용인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차량에 올랐다.

'고독사(孤獨死)'라는 단어는 원래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이야기는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됐다. 사회와 단절된 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품정리와 특수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도 하나 둘씩 생겨났다. 처음에는 2~3개 업체가 성업 중이었지만 최근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업체들이 부쩍 늘었다. 6개월 전 개업한 바이오에코도 그 중 하나다.

박 이사는 "지난주에는 매일 유품정리 의뢰가 들어와 쉴 틈이 없었다"며 "현장에 가보면 살인사건도 있지만 90% 이상은 고독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외롭게 돌아가시는 분들을 보면 집에 술병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외로움을 참지 못해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낙서를 해 놓거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흔적이 보이는 경우도 많다"며 "어떤 집에 갔을 때는 문 앞에 미안하다는 글을 써서 붙여 놨다. 뭐가 미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아팠다"고 소개했다.

업체에 유품정리를 의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족들이다. 시신을 거두어 줄 가족이 없을 때는 건물주들이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의뢰인들이 가장 많이 부탁하는 부분은 '조용한 일처리'다.

박 이사는 "가장 많이 받는 부탁은 남들 모르게 해달라는 거다"라며 "이런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불효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임대인들의 경우에는 소문이 나면 세가 안 나갈 수도 있으니 답답하고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을 편하게 보내드리면 유족들도 한시름 놓고 일상에 빨리 복귀할 수 있다"며 "일을 하고서 고맙다는 연락을 받을 때는 '내가 망자에게 참 잘해드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