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 선배님이 '도가니'로 원성을 듣다가 '광해, 왕이된 남자'로 이미지가 좋아졌거든요. 그런데 '26'년에서 또 '그 사람'을 연기했잖아요. 우스갯소리로 '선배도 연기에 참 굴곡이 많다'고 했어요."

배우 이경영(52)이 영화 '남영동 1985' 촬영을 마친 소감이다. 1985년 9월4일 민주화운동가 '김종태'(박원상)가 가족들과 목욕탕을 다녀오던 길에 경찰에 연행되며 시작한다. 눈이 가려진 채 도착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공안 수사당국이 '빨갱이'를 추출해낸다며 벌이는 고문을 22일간 당한다.

이경영은 경기도경 대공분실 책임자이자 70~80년대를 주름잡은 고문기술자 '이두한'이다. 완벽주의 기질의 냉혈한으로 물고문, 전기고문 등 악랄하고 잔인한 고문을 태연하게 자행한다. 지적이고 인자해 보이는 외모, 차분하고 정돈된 억양 등이 '이두한'의 행동에 힘을 실었다.

"이두한 자체의 신념은 애국이다. 잘못된 애국심이지만 그게 올바르다고 믿고 책임감 있게 한 행동이다. 촬영이 끝난 후 이 사람도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고 깨달았다. 그 위에 권력을 가진 사람은 권력을 잃지 않고 하수인이 노력을 하는 거 아니냐. 직급이 올라가는 실적 위주의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이두한' 역시 자신의 행동이 간첩을 잡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시대의 오류였다"고 판단했다.

고문을 가하는 입장에서도 고통은 컸다. "'김종태'를 연기한 박원상이 받은 고문은 극이 진행되면서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그러다보니 신체적으로 적응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 입장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고통이 점점 깊어졌다.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것 같이 힘들었다. 수면제가 따로 없었다. 집중도 굉장히 필요로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나니 계속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상한 경험도 했다. "고춧가루를 탄 물로 고문할 때는 이상한 소리까지 들었다. 배우라는 사람은 감독이 컷 사인을 내리기 전까지 계속 연기를 해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 '컷' 소리가 나서 연기를 마쳤는데 감독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더라. 동시녹음을 나중에 들어보니 낯선 여자의 목소리로 '컷'이 녹음돼 있었다. 거기서 떠도는 영혼조차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이경영은 "이 영화를 찍는 동안 감독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촬영 기간 동안 카메라 뒤에서는 집중도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안 그러면 지쳐서 촬영을 못할 정도였다. 컷 소리가 나면 다른 얘기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면서 "감독님이 너무 힘들어하는 게 보였다. '내가 고문을 하면서 고문을 받고 있구나'고 말하더라. 힘들고 아픈 모습을 연출하고 행하는 선장의 입장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숙연해졌고 끝까지 잘 완수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한 공간이었지만 책임감과 열정, 또 하나가되는 것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촬영 마지막 날 감독을 안아서 칠성판에 눕혀 드렸다. 그냥 웃더라. 말씀이 워낙 없는 분이지만 '고맙다. 니들'이라고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

또 "원상이가 고문을 당해서 연기하는 동안은 힘들었잖아요. 하지만 컷 소리가 나면 온 몸을 다 닦아주고 마사지해줬어요. 또 가려운데 긁어주며 형들이 갖은 수발을 다 들어줬어요. 촬영장 밖에서는 상전이었죠"라며 농담도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는 '김종태'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된 후 '이두한'을 면회하는 장면을 꼽았다. '김종태'의 모델인 정치인 김근태(1947~2011)의 수기 '남영동'에는 "이근안을 면회 갔을 때 그의 태도는 여전히 불순하고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는 자세였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정지영(66) 감독은 이경영에게 진심을 요구했다.

"김종태가 이두한을 면회 오지만 결국 용서를 못해요. 무릎 꿇은 이두한을 뒤로 한 채 나가려고 할때 고문실에서 늘 들었던 휘파람 소리가 나잖아요. 실제로 분 것은 아니지만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처음 시나리오로 읽는데 소름이 돋았어요. 연기할 때도 진심으로 용서를 빌지만 표정은 모호하게 가기로 마음 먹었죠"라는 계산까지 마쳤다.

이경영은 "'남영동 1985'는 현실과 맞물려서 봤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없었던 일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다. 불편하고 보는 게 고통스럽더라도 이 영화가 주는 진정성을 찾아보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되는 것 같다. 대선 후보들이 VIP시사회 때 오셨을 때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영화가 제작되지 않게 바른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를 깊게 느껴서가 아니라 보편타당한 정의가 무엇인지는 아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분들이 고통스럽더라도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에 관심이 클수록 우리 다음 세대들이 좀 더 편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바라는 시대입니다. 상처를 그냥 두면 곪고 썩죠. 그래서 '26년' '남영동 1985'에 참여했어요. 개인적으로 '26년'의 경우 캐스팅 단계부터 난항이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용기를 내줬어요. 그 용기가 이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나 역시 이런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성하게 되는 것 같다. 떨어져서 민주주의 혜택을 받은 것을 배우로서 경험하다보면 부채를 영상을 통해 덜어내는 느낌이 있다. 아주 소극적인 방법인 것 같다. 하지만 보다 더 분명한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하게 된다. 영화를 통해서 배우고 또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가야할지 배운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이런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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