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정해우(庖丁解牛)=포정이라는 백정이 신기(神技)에 가까운 칼솜씨로 소의 뼈와 살을 발라내다. 입신의 경지에 이르면 소를 잡아도 마치 춤을 추는 듯하고, 칼질하는 소리도 리드미컬한 게 마치 음악과 같다. 동작 하나하나가 기술을 넘어 예술이 되고, 도(道)가 되는 것이 모든 무예의 궁극점이다. 고수는 고수를 한눈에 알아본다. 바둑의 고수는 바둑돌을 놓는 손 맵시만 봐도 상대의 기력(棋力)이 어느 정도인지를 간파한다. 씨름의 고수는 샅바 잡는 것만 봐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검의 고수는 칼끝이 스쳐
문화
김태관
2019.05.03 16:58
-
※불사지사(不射之射)=화살을 쏘지 않고도 쏜다. 진정한 고수는 활을 들지 않지 않는다. 그리고 눈빛 하나만으로도 공중에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린다. 활을 쏴서 무엇을 맞추겠다는 마음조차 없는 무심한 경지. 활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린 지극한 경지. 바로 입신의 경지이다. 위기구품의 마지막 품계인 입신(入神)은 프로기사 9단의 별칭으로, 말 그대로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흔히 어떤 분야의 최고수들을 가리켜 입신의 경지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입신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신의 경지인 입신은 인간의 영역을
문화
김태관
2019.04.19 09:00
-
※맹인할마(盲人瞎馬)= 맹인이 외눈박이 말을 타고 간다. 그것도 캄캄한 밤에 깊은 물가에서. 위태로워 보이는가? 그것은 옆에서 보는 사람의 생각이다. 정작 맹인 자신은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 보여서 겁이 난다면 눈을 감아라. 고수는 제대로 보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진(晉)나라에 고개지(顧愷之)란 사람이 있었다. 그림이 뛰어나고 학문도 높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성품도 소탈하여 우스갯소리로 주위를 웃기곤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려 담소하다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짓이 어떤 것이냐’ 를 놓고 우스개 한마디씩 하기로 했
문화
김태관
2019.04.09 13:05
-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성인은 집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 좌조에 이른 고수는 앉아 천리, 서서 만 리를 내다본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보는 사람은 아직 하수다. 진정한 고수는 보이지 않아도 본다. 지혜라는 이름의 또 다른 눈을 통해서다. 위기구품의 여덟 번째 품계인 좌조(坐照)는 “가만히 앉아서도 천변만화를 훤히 내다본다”는 단계다. 프로기사 8단의 별칭인 좌조의 경지에 이르면 천문지리를 두루 꿰고 있기에 방안에 앉아서도 삼라만상의 변화를 훤히 꿰뚫는다. ‘좌시천리(坐視千里) 입시만리(立視萬里)’라는 표현처럼 말 그대
문화
김태관
2019.03.14 15:57
-
※기유욕야 불능은기정(其有欲也 不能隱其情)=욕망을 품으면 본심을 숨길 수 없다. 에 나오는 말로서, 욕망을 건드리면 그 사람의 속마음이 나온다. 욕망이 그 사람의 급소다. 구체의 고수는 급소를 짚어 손가락 하나로도 너끈히 상대를 제압한다. 프로기사 7단의 별칭인 구체(具體)는 모든 것을 구비해서 바둑의 요체를 터득했다는 뜻이다. 구체에 이르면 기술적인 면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모든 수법을 마스터했기에 행마가 막힘이 없고 간명하다. 구체의 고수는 사안의 핵심을 꿰뚫어 정확히 급소를 찔러간다. 이는 마치 한의사가 침
문화
김태관
2019.03.04 09:00
-
※다기망양(多岐亡羊)=길이 많아서 양을 잃는다. 복잡한 생각들을 걷어내야 길이 보인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인생길도 복잡해진다. 하수는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지만, 고수는 복잡한 것도 단순하게 푼다. 복잡한 문제도 답은 간단한 법이다. 생각을 도려내는 칼이 있다. 이 칼은 잡초처럼 무성한 생각들을 쳐내어 실체가 또렷이 드러나게 해준다. ‘사고(思考) 절약의 원리’라고도 불리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 바로 그것이다. 중세 영국의 신학자 윌리엄 오컴이 들고 나온 이 면도날은 어떤 일을 설명할 때 복잡한 것보다는
문화
김태관
2019.02.08 09:15
-
※토채매의(討債買義)=빚을 탕감하여 의를 얻으라. 현명한 사람은 채무문서를 불살라 마음을 사들인다. 마음을 얻는 것은 든든한 집을 얻는 것과 같다. 사람들의 마음에다 집을 지어라. 하수는 보이는 집을 짓지만, 고수는 보이지 않는 집을 짓는다. “복싱은 이상한 스포츠지. 모든 게 거꾸로야. 왼쪽으로 가려고 할 땐 왼발이 아닌 오른 발가락을 움직여. 오른쪽으로 갈 땐 왼 발가락을 움직이지. 고통이 와도 피하기는커녕 그 속으로 뛰어드니까. 복싱의 마법은 모든 게 거꾸로라는 거지.”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겸 주연을
문화
김태관
2019.01.31 14:35
-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배움은 날마다 더하는 것이고, 도는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 학문과 도는 차원이 다르다. 도에 이르려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한다. 얻으려면 주고, 가지려면 버리고, 이기려면 져주는 오묘한 역설의 세계, ‘통유’가 그 입구다. 마주 달리는 두 직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기하학에 말하는 평행선의 정의이다. 그런데 평행선은 과연 만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기하의 세계에서 평행선은 결코 만날 수 없지만, 회화 즉 그림의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평행선은
문화
김태관
2019.01.18 09:05
-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 亂邦不居)= 위험한 곳에는 발도 들이지 말고, 어지러운 곳에는 누울 생각을 말아야 한다. 도처가 지뢰밭인 세상살이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한다. 지혜는 위험을 위험으로 아는 데서 출발한다.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고, 정치가는 거짓을 말하기 위해 진실을 사용한다.”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예술가는 거짓을 들어 진실을 보여주고, 정치가는 진실을 앞세워 거짓을 감춘다. 현실은 진실과 거짓이 마구 섞여 있다. 외양만 봐서는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문화
김태관
2019.01.10 14:24
-
※감조유적(減灶誘敵)=아궁이 수를 줄여 적군을 유인하다. 하수와 고수의 차이는 수읽기의 차이다. 하수는 눈앞의 것들을 센다. 반면에 고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센다. 아궁이 숫자가 줄었다고 쾌재를 부르는 것은 하수다. 이미 그럴 줄 알고 고수는 다음 수를 세고 있다. 지혜라는 눈(眼)을 통해. 위기구품의 다섯 번째 품계인 ‘용지(用智)’는 “지혜를 사용할 줄 안다”는 뜻이다. 전투에 임했을 때 힘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략(智略)을 구사해 상대를 내 페이스대로 요리할 줄 아는 단계다. 두뇌게임인 바둑에서 본격적으로
문화
김태관
2019.01.02 14:37
-
※이기용병(以奇用兵)=군대는 기계(奇計)로써 움직인다. 나라는 정도(正道)로 다스리지만 군대를 부릴 때는 계책이 필요하다. 뻔히 보이는 대로 움직여서는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울어야 할 때는 도리어 웃어라. 기상천외한 웃음소리는 칼보다 강하다. ‘소교(小巧)’는 말 그대로 ‘작은 기교’이지만 그 효과는 크다. 이는 마치 배의 키와도 같다. 항해하는 배는 키를 조금만 틀어도 전체의 항로가 달라진다. 작은 방향키 하나가 큰 배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교에 이른 고수는 우직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살짝살짝 방
문화
김태관
2018.12.04 13:11
-
※이우위직(以迂爲直)=돌아가는 것이 지름길이다. 직선으로 간다고 반드시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곡선은 직선보다 빠르다. 고수는 우회로를 지름길로 삼는다. 고수가 되려면 직선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야구투수에는 강속구 위주의 정통파와 변화구 위주의 기교파가 있다. 직구만 던져서는 아무리 공이 빨라도 타자에게 얻어맞기 십상이다. 커브를 섞어 던져야 강타자라도 뜻대로 제압할 수 있다. 위기구품의 ‘소교(小巧)’가 이를테면 변화구에 눈을 뜬 기교파 투수에 해당한다. 프로기사 4단의 별칭인 ‘소교’는 “서투르나마 기교를 부릴
문화
김태관
2018.11.14 11:42
-
※포호빙하(暴虎馮河)=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걸어서 황하를 건너려고 한다. 호기롭게 보여도 무모함은 용기가 아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만용은 패망을 부를 뿐이다. 진정한 힘은 주먹이나 창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다져진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힘은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 투력(鬪力)은 프로기사 3단의 별칭으로 싸울 힘을 갖췄다는 뜻이다. 힘이 있어야 험한 승부의 세계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숨은 고수들이 득실거리는 도산검림(刀山劍林)의 세계에서는 힘이 없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힘은 대체 무엇일까. 힘이 센 사
문화
김태관
2018.11.02 19:22
-
※마부작침(磨斧作針)=뭉툭한 도끼도 계속 갈면 마침내 바늘이 된다. 쉼 없는 단련이 강자를 만든다. 고난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꿈을 이루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반복은 기적을 일구는 힘이다. 무슨 일이든지 오래 되풀이하다보면 그 일이 몸에 붙어 익숙해진다. 그러면 누구와 겨뤄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에 힘이 솟는다. 위기구품에서는 그런 단계를 투력(鬪力)이라고 일컫는다. 투력은 “힘이 붙어 비로소 싸울만하다”라는 뜻으로 바둑의 프로기사 3단의 별칭이다. 싸우려면 무엇보다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오랜 반복 훈
문화
김태관
2018.10.16 13:48
-
※소인용지 대인용우(小人用智 大人用愚)=소인은 지혜를 사용하고, 대인은 어리석음을 사용한다. 하수는 똑똑해야 이기는 줄로만 안다. 그러나 고수는 어리석은 체하며 승리를 낚아챈다. 지혜는 누구나 쓰지만, 어리석음은 고수만이 쓸 수 있는 비밀병기다. 어떤 골동품 상인이 시골식당에 들렀다가 눈이 번쩍 띄었다. 식당주인이 개에게 밥을 주는데 보니까 개밥그릇이 귀한 고려청자가 아닌가. 다짜고짜 개밥그릇을 사겠다고 하면 의심을 살 것 같아서 골동품 상인이 꾀를 내었다.“이보시오. 주인장. 그 개를 나한테 파시오.”“이 개는 별 거 아닌 잡종인
문화
김태관(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2018.10.06 18:47
-
※매사마골(買死馬骨)=죽은 말의 뼈를 거금을 주고 사들이다. 평범하게 행동하면 평범한 결과밖에 못 얻는다. 특별한 결과를 거두려면 특별한 일을 해야 한다. 고수는 하수가 보기에 별난 일을 한다. 밑지는 장사를 하라.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고수의 행보다. 약우(若愚)는 프로기사 2단의 별칭으로, 도가의 가르침인 ‘대현약우(大賢若愚)’에서 따온 말이다. 크게 현명한 자는 어리석은 듯이 보이고, 크게 곧은 것은 굽은 듯이 보이는 법이다. 바둑의 ‘약우’는 “어리석어 보여도 나름대로 꾀가 있다”는 뜻이지만 그 어리석음은 큰 지혜와 통한다.
문화
김태관(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2018.09.17 09:40
-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달아나게 한다. 움직인다고 산 자가 아니고, 누웠다고 죽은 자가 아니다. 죽고 산 것을 모르면 살아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하수는 사활에 속고, 고수는 사활을 속인다. 죽지 않으려면 죽은 자에게 속지 말라. 살아있는 돌과 죽은 돌, 사활을 아는 것은 바둑의 기초다. 바둑수업은 사활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바둑의 기초 중의 기초인 사활을 제대로 아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내로라하는 고수들도 사활을 착각하여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이는 마치 살아
문화
김태관(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2018.09.07 13:05
-
※욕강약수(欲彊弱守)=강해지려면 약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라. 자신을 보존하는 길은 강함뿐이 아니라 약함에도 있다.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하면 쉽게 부러진다. 강해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약함을 내세워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것이 고수로 가는 첫걸음이다. 수졸(守拙)은 바둑에서 프로초단의 별칭으로 ‘졸렬하나마 지킬 줄 안다’라는 뜻이다. 이제부터는 수졸에서 입신으로 가는 위기구품(圍棋九品)의 각 단계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전쟁의 승리는 먼저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싸움은 이길 수 있을 때
문화
김태관(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2018.08.24 11:52
-
※욕승인자 필선자승(欲勝人者 必先自勝)=남을 이기려면 먼저 나를 이겨야 한다. 계춘기의 선기(先己)에 나오는 말이다. 나부터 이겨야 한다. 나를 이긴 사람은 남도 이기게 되어 있다. 많은 적을 무찌르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거울 앞에 서면 보이는 그 사람, 딱 한 사람만 이기면 된다. 미스코리아와 권투선수, 누가 더 거울을 많이 볼까? 영화 (2002년 작・곽경택 감독)에 따르면 권투선수가 더 많이 거울을 본다. 은 링 위에서 사망한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젊은 날의 방
문화
김태관(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2018.08.13 18:30
-
※선승구전(先勝求戰)=이기는 군대는 이겨 놓은 다음에 싸운다. 반면에 지는 군대는 싸움부터 하고본다. 승리의 비결은 의외로 쉽다. 질 게 뻔한 싸움은 안 하면 된다.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이겨 놓고 싸워라. 전쟁에서 항상 이기는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워라”이다. 썰렁한 이야기라고 흘려버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병법의 대가 손무(孫武)의 가르침이다. 군형(軍形)편에서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이길 수 없으면 지켜야 한다. 공격은 이길 수 있을 때에만 하는 것이다.”손자는 이렇게도 말한
문화
김태관(경향신문 전 논설위원)
2018.07.18 12:02